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본질적으로 관심이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애도의 뜻을 표하지만 내면으로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다른 사람이 다 죽어도 자신이 죽을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타인의 동정을 구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행동이고 본인의 아픔만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판사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이반 일리치는 삶의 절정 순간에 불치병 판정을 받고 주위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식과 위선뿐이었다. 톨스토이는 인간 내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보편적인 이기심을 이반의 좌절과 고통을 통해 칼날 같은 통찰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반의 친구 슈바르츠는 죽은 이반 일리치의 집을 방문해 이반의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머리 속으로는 그 날 밤에 있는 카드놀이를 생각하고 있다. 또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반의 아내와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낮은 의자와 고장 난 스프링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다. 함께 일했던 동료 판사들은 이반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승진될 것이며 연봉이 어느 정도 올라갈 것에 골몰하고 있다. 이반의 아내조차도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짓고 슬퍼하지만 마음 가운데는 남편의 연금을 세세하게 따지고 정부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고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어쩌면 가장 고상한 척하는 천박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위대함은 삶의 천박한 부분뿐만 아니라 은밀한 내면까지도 섬뜩한 관찰력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데 있다. 45세 중년의 가장, 판사로서 출세의 길을 걷고 있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1882년 러시아인데 오늘날 시간적 격차와 지리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도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나 공통적으로 당면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보편타당한 소재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심경변화를 겪는다. 처음 그는 죽음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연이어 실패하고, 죽어가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성 속에서 그는 자신이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던 것들이 죽음 앞에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달아간다. 그리고 삶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곱씹어 보는데, 죽음을 앞 둔 인간의 진실한 절규는 오히려 죽음이 아닌 삶을 부각시킨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의 중·단편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작품이다.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등 대표적인 작품을 완성한 후 10년 동안 깊은 슬럼프 가운데 빠져 있다가 발표한 작품이라 톨스토이 작품세계에서는 일종의 분수령처럼 여기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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