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형사사법의 위기 / 윌리엄 스턴츠 지음·W미디어 펴냄
미국을 여행한 독자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슬럼가에 가지 말고, 누가 돈을 요구하면 그냥 줘라.” 미국은 법률, 특히 형사사법 분야에서는 선진국으로 불리는데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 경찰의 압수수색 권한 제한, 피의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자기부죄(自己負罪) 거부 등 여러 제도와 규범은 미국 헌법이 모델이다.
고(故) 윌리엄 스턴츠 하버드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의 유작 ‘미국 형사사법의 위기’(원제 The Collapse of American Criminal Justice)가 번역돼 나왔다. 저자는 미국 형사사법 체계가 20세기 후반부터 ‘붕괴’(collapse)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교도소는 수형자로 넘쳐난다. 성인 인구 10만명당 교도소에 구금된 수형자는 756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전세계 평균은 145명). 수형자 가운데 흑인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20~30대 흑인 남성의 경우 10만명당 7,000명이나 구금돼 있다. 범죄 위험지역도 빈곤지역과 흑인 거주지에 편중된다.
“흑인 남성들에게는 구금시설에서 얼마간 갇혀 있는 일이 보통의 인생 경험처럼 되어버렸다. 누구나 겪는 인생 경험이라면 범죄 억지효과는 적을 수밖에 없다.” 형사사법 체계가 흑인을 차별하면서 형벌을 통해 범죄를 막지도, 안전을 보장하지도, 정의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저자가 ‘붕괴’라는 극단적 표현을 쓴 이유다.
현행 사법체계가 법 집행관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미국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차량 통행량을 고려하면 지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누구를 골라 딱지를 떼고 벌금을 물릴지는 경찰관의 재량에 맡겨진다. 이같은 ‘재량적 사법’은 ‘차별적 사법’으로 이어진다. 경찰들이 교통법규 위반을 명목상 이유로 흑인들의 차량을 골라 정지시키고서 마약범죄 증거를 수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민주주의의 문제도 있다. 지방검사와 법관들을 투표로 선출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지역 민주주의가 쇠퇴한 결과 사법관리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형사사법 체계에 필요한 과제로 평등한 법적 보호의 이상 회복, 지역 민주주의 확대, 유죄인정협상 축소와 배심재판 확대를 제시한다. “형사사법이 더 공정해지려면 범죄와 형벌의 비용을 직접 치러야 하는 시민들의 법집행 영역을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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