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그네 길/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인생은 나그네 길/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60년대 초 한국에서 유행하던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노래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기에 욕심 부리지 말고 착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한다.
얼마 전에 80에 가까운 지인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 말씀이 “인생은 나그네 길이 아니다.”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오던 이야기들과는 너무도 달라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렸다.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 생각해 봅시다. 작품 속에는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고, 단역과 악역 같은 많은 배역이 있습니다. 어떤 배역은 한 두 마디 대사만 있고, 어떤 배역은 말없이 길을 지나기도 하고, 또 어떤 배역은 터무니없이 쓰러져 죽기도 합니다. 물론 주연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이야기 구성상 미리 짜 맞춘 단역 배우들이지만 그런 단역 배우들이 없다면 영화는 결코 완성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도 그래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길이라는 생각에 빠지면 소홀이 한다 이 말입니다. 주어진 인생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갖기 위해서라도 나그네 길이라 가벼이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 영화에서의 배역, 즉 주연이나 조연, 단역들은 보는 사람입장에서 구분하는 것이다. 어떠한 역할이든 그 부분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누가 어떻게 생각하거나 바라보든 자신의 삶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숙생이라는 노랫말의 ‘나그네 길’과 그 분이 말씀하신 ‘나그네 길’이 같은 말이지만 속뜻은 조금 다른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인생 자체를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자연의 현상에 따라 우리가 정해 놓은 연, 월, 시를 나누어 1 년씩 반복해서 살아야 하는 삶, 그 반복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살기에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박완서의 단편 <대범한 밥상>에서 주인공의 남편은 췌장암으로 삼사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자식들에게 자신만의 동등한 방법으로 재산을 분배하고 삼 개월 반 만에 세상을 뜬다. 남편이 죽고 3년 뒤 주인공 또한 40대 수술 받았던 유방암이 온 몸으로 전이 되어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은 남편처럼 재산을 분배할 능력이 못 된다 하여 찾은 사람이 여고동창생 경실이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휴가를 떠난 경실의 딸이 비행기 사고로 어린 아들 딸만 남기고 저 세상 사람이 된다. 결국 아이들의 보호자는 외할머니와 친할아버지 둘 뿐이고 손자는 친할아버지를 손녀는 외할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통에 넷은 시골동네 바깥사돈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이는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세상의 눈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가족구성이다.
주인공은 경실에게 세상의 눈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의혹의 눈초리로 동창생 경실을 찾았고 친구의 병을 모르는 경실은 건강에 좋다는 시골밥상을 차려 함께 먹으며 둘의 대화는 이루어진다.
대화의 핵심은 세상의 시선을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말에 “내 삶은 나의 것”을 당당하게 설명하며 친구의 건강을 챙기는 밥상의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시선 보다는 자신의 삶에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확신을 주장하는 친구의 대화에서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정처 없이 왔다가 정처 없이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그래서 욕심 부리지 말고 선하게 살자는 의미의 ‘나그네길’에 동의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 삶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확신을 가져보자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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