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명분인 것 같아요. 단순히 야하다 아니다는 문제가 안 되죠. 어떤 목적을 가진 연기인가가 중요하고 필요한 감정인가를 고민하죠. 동성애를 다뤘다고 모두 ‘브로크백 마운틴’이 나오는 건 아니고 돈 많다고 아무렇게 찍어서 극장에 건다고 영화가 아니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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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간신’(감독 민규동ㆍ제작 수필름)에서 최악의 간흉 임숭재로 분한 주지훈은 권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폭군 연산군(김강우)에게 아첨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1만 미녀를 강제 징집해 바친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하나 호시탐탐 ‘왕 위의 왕’을 노리는 인물이다. 전작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다소 코믹한 모습을 선보이고 이후 ‘결혼전야’와 ‘좋은 친구들’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살색 가득한 이번 작품에서 금기를 건든다.
배우 주지훈을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워낙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지라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괜히 빙빙 돌아 불필요한 오해를 사느니 솔직한 게 좋단다. 예상하지 못한 노출 신에 4개월 동안 닭가슴살과 고구마만 먹었다는 일화부터 사회적 금기를 깨는 등 무거운 이야기까지 나왔다.
사람도 그렇거니와 인터뷰 내용도 참 실하다.
“자유롭지 않으니까 자유롭고 싶은 영혼이다.” 주지훈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어 다시 그를 기용한 민규동 감독은 “주지훈은 내가 낳은 못난이”라 했단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으면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고, ‘엉친다’는 표현으로 반항기를 내본다. 어쨌든 자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주지훈의 안을 들어왔다 나가야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고 속이 개운하다.
“민 감독님이 저를 다시 쓰신 건 아마도 만만해서?(웃음) 배우는 어쨌든 ‘을’의 입장이잖아요. 쓰는 분(감독)이 마음에 들어야 캐스팅되는 것이기 때문에 눈치도 꽤 보는 듯해요. 감독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하지만 ‘간신’은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던 듯해요. 이미 작품을 만들어 봤던 사이라 그런지 편하게 의견도 제시할 수 있었고 감독님도 직선적인 디렉팅을 주셨죠. 엄청난 멘탈을 가진 분이세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연기를 어찌나 당당하게 요구하시던지… 눈동자도 안 흔들리시던 걸요?”
민규동 감독이 원한 연기는 수위가 ‘아주’ 높았다. 극 중 임숭재의 상상 속에 기녀 단희(임지연)와 벌이는 정사는 사실 시나리오에는 없던 장면. 주지훈은 “리딩단계에서 갑자기 생긴 베드신이라 부담 있었지만 꼭 필요하다는 감독의 말에 결심했다”고 말했다. 성행위 자체를 카메라에 담기보다 마치 움직이는 춘화인 듯 아름답게 표현하겠다는 약속을 믿었고, 민 감독은 그것을 지켰다. 주지훈의 우람한 등 근육과 임지연의 하얀 살결이 어우러진 그 장면에 꽤 많은 이들이 침을 삼킬 듯하다.
“관념화된 욕망의 단편 같았어요. 단희에 대한 임숭재의 감정은 단지 ‘사랑’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 있기에 소설 ‘소나기’속 그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어떤 정치적 트라우마와도 관련이 있죠. 남성성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고요. 민규동 감독님 작품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베드신이 마냥 퇴폐적이지 않은 건 이 때문인 듯해요. ‘간신’을 놓고 정치극이다, 멜로다 여러 해석이 나오는데 특정한 틀에 가두는 건 의미가 없죠. 보는 대로 느끼고, 각자의 해석을 내놓는 게 좋아요.”
파격 노출이 힘들지 않았느냐 물으니 “오히려 더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주지훈의 베드신은 편집되지 않았으나 다른 배우 분량은 꽤 잘려 나갔단다. 야수와 같은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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