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이야기의 기본 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들 한다. 여기서 인물로 번역된 말의 원어는 person이나 figure가 아니라 character다. 성격이 없으면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작가들이 하는 일이란 바로 특정한 성격 안에 잠재돼 있는 이야기를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현행화 할 수 있는 최상의 상황을 창조하는 일일 것이다. 그 상황 속에서 인물은 그의 성격이 요구하는 선택들을 하며 그것이 서사의 행로를 결정한다.(…) 요컨대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특정한 ‘성격’이 특정한 ‘상황’에 던져졌을 때 어떤 특정한 ‘선택’을 하는지를 지켜보는 작업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씨네21’)’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이다. ‘평면적 인물’이라거나 ‘입체적 인물’이라는 말은 곧 그 인물의 성격이, 피아 구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남자가 혹은 여자가 이성을 만날 때 “걔는 착하기만 해서 매력이 없어"라고 말하며 이른바 ‘나쁜남자’‘나쁜여자’에게 매혹되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관객은 점점 똑똑해져 뻔한 인물, 뻔한 이야기에는 마음을 주지 않는다. 최근 한국영화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이 ‘뻔함’ 때문이다.
민규동 감독은 뛰어난 캐릭터 조형 능력을 가진 연출가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과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의 성공에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있었다. ‘연정인’과 ‘효신’은 특정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인물. 그래서 2012년의 영화는 코믹하면서도 뭉클했고, 1999년의 영화는 공포스러운데 애잔했다.
민규동 감독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그의 신작 ‘간신’은 전에 없이 화려하고, 자극적이다. ‘간신’의 화법은 예전과 다르게 거칠고 직설적이다. 문제는 이런 변화와 함께 캐릭터가 무너져내렸다는 것. ‘간신’의 인물들은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내듯 폭주한다. 이들의 내면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요동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끝이다. 그들은 이해가 되는 존재들이 아니다. 광기 어린 악행을 저지르고, 잠시 약해진 뒤 또 ‘이유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그저 그런 인간들이다. ‘나쁜남자’를 이야기할 때 따라 나오는 말이 ‘못된남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 영화 ‘간신’은 ‘단순하게 못된’ 인간들의 이야기다.
연산군(김강우) 11년, 왕의 광기는 점점 심해진다. 조선 최악의 간신 부자 임사홍(천호진)·임숭재(주지훈)는 미쳐가는 왕의 머리 위에 올라 서기 위해 조선 팔도를 뒤져 여인 1만명을 모은 뒤 왕에게 바친다.
연산군은 상영 시간 내내 정신이상자 이상의 행동을 쉬지 않고 저지른다. 살인과 패륜이 이어지고, 극도로 색(色)에 탐닉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인간이 아니다. 짐승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유는 그의 어미 폐비 윤씨가 잔혹하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폐비 윤씨를 향한 그리움과 어미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에 대한 분노로 미쳤다는 건 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영화는 이 역사에 관해 어떤 해석도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조차 내레이션으로 처리한다. 영화가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면, 극의 테두리 안에서 다루는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 ‘간신’에는 설명도, 해석도 없다. 무언가 극도로 복잡한 내면을 가진 듯 보이는 연산군은 영화에서 그저 미친 인간이다.
연산군의 폭주를 부추기는 임숭재도 다르지 않다. 영화는 임숭재의 권력을 향한 욕구를 사춘기 시절 그가 겪었던 한 사건의 탓으로 돌린다. 극의 후반부 그의 캐릭터가 갑작스럽게 변화할 때도 같은 사건이 원인이라는 듯 서사를 전개한다. 하지만 그 일이 임숭재의 변화, ‘왕 위의 왕’으로 군림하려는 그의 권력욕을 설명하지 못한다.
영화에는 임숭재라는 최악의 간신에 대한 최소한의 해석이 없다. 물론 영화가 인물의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상 ‘예술’이다. 하지만 해석이 없는 것과 선명하지 않게 해석하는 건 다른 일이다. ‘간신’은 임숭재라는 인간을 관객에게 어설프게 이해시키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더 좋지 않은 길을 간다.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이 이런 식이다. 요컨대, 인물은 있는데 캐릭터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야기가 “현행화"되지 않는다. 미친 왕과 최악의 간신, 왕에게 바쳐진 1만명의 여자라는 흥미로운 요소를 가지고도 서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에피소드를 이어붙이며 같은 자리를 맴돈다. 영화는 초반부에 전제한 ‘폭군과 간신이 있다’라는 설정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이때 떠오르는 건 가수 이승기의 노래 제목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때 ‘간신’의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민규동 감독의 “권력을 향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 모두가 간신일 수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은 허무한 것이 되고 만다.
캐릭터의 붕괴에서 시작해 서사의 실종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전개 앞에서 누가 봐도 신경쓴 것으로 보이는 ‘때깔 좋은’ 화면과 미장센은 무의미해진다.
배우들 또한 엄청난 열연을 펼친 것처럼 보이나 건조하게 굳어져버린 캐릭터 앞에서 그저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중독’과 ‘봄’으로 주목받은 신인배우 임지연과 이유영은 소모되고 말았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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