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 <수필가>
초록의 나뭇잎들이 합창을 하는 따사로운 유월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언젠가는 해야만 할 것 같은 무거운 숙제를 마치고 작은 둥지에서 하루를 접고 길게 눕는다. 보여 지는 것들로 가치의 척도를 나름대로 계산해 놓고 때로 외면당하는 현실 앞에서 쓰라린 경험을 하기도 하고, 살아가는 의미에 주도적으로 힘을 실어 주다 보면 고상하던 몸짓도 소멸하는 불꽃처럼 무기력하게 스스로 무너질 때도 있다.
결함이 많은 세월을 덮어 쓰고 달리다가 지나온 터널 끝자락쯤에서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몽땅 털어 버리고 비우기 위한 작업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소유의 짐으로 얹혀 지내지 말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기에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몇 날을 씨름하고 진짜 내 것들이라고 추려 내놓은 살림살이는 아직도 너무 버거워 보인다. 언젠가는 그토록 소중하다고 간직했던 것들도 무가치 하게 전락하게 되고 아무리 작은 것일 지라도 채우기만 하다 보면 커다란 짐이 되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새삼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새 일과 휴식의 조절이 필요한 나이가 되고 남아있는 삶을 무엇으로 채워 가야 하는가 하는 반복되는 물음은 우선 집부터 파는 일 이었다. 오랫동안 동면 상태에 있던 집이 새 주인을 찾았다.
우리가 이사할 집은 둘이서 살기에는 안성맞춤인 아담한 콘도로 정했다. 넉넉한 공간에 빈틈없이 채워진 싱글하우스에서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나눠 주고 버리고 덜어내도 끝없이 나타나는 물건들은 더 이상 살림이 아니고 처치하기 힘든 짐들로 쌓여 갔다. 그동안 참 많은 것을 껴안고 살아 왔구나 - 한숨이 뽀얀 먼지위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욕심 부리고 내려놓지 못한 결과로 사서하는 고생이 후회가 되고 반성이 되고 다짐이 되어 간다. 족히 3/2를 덜어 내는 과정은 비우지 못 하고 채우기만 했던 어리석게 살아온 지난날의 흔적을 지워 내는 대대적인 공사가 되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워나간다"는 눈으로만 답습하던 법정스님의 글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렇듯 진정한 비움의 의미는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배움과 경험을 반복하며 깨닫게 된다.
성장한 자녀들도 부모의 둥지에서 떠나가고 보여 지는 것들로 만족하던 철없던 시절도 한나절 재잘거리던 새떼 되어 날아가 버렸다. 지난 시간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도 타인으로부터의 자유함도 또 다른 비움의 나의 모습이 되길 바라며 넉넉한 가슴으로 온전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살아온 지난날의 실수도 껴않으리라 다짐한다.
아담한 창가에 부딪치는 나뭇잎이 바이올린의 선율이 되어 비워 놓은 공간을 넘나든다. 살림을 단출하게 줄여 가듯이 마음과 생각도 털어 내고 단순한 삶으로 채워가다 보면 이전보다 더 알뜰하고 보람된 행복한 삶의 괘도에 더 쉽고 빠르게 올라 갈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바람은 나만의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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