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 하와이 창간 43주년 보훈의 달 특별기획
글쓴이/사진제공 : 스탠리 후지이 , 번역 : 손수현, 유미영
한국일보 하와이 창간 43주년,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본보는 한국전참전용사 스텐리 후지이 옹의 한국전 참전용사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 수필은 주 호놀룰루 총영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재기발랄한 공관원들이 의기 투합해 번역을 했다. 이들은 업무의 연장선이 아닌 자원봉사로 이 작업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전쟁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뜨고 그 실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번역 후기를 본보 4월14일자 기사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지금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전참전용사 할아버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지켜 낸 자유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다.
<편집자주>
우리는 천천히 걸었는데 산 중턱에도 미치기 전에 폭격이 시작되어 머리위로 포탄이 날아다녔고, 어떤 폭탄은 우리 바로 옆에서 터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땅에 엎드렸고 나는 파편이 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서운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지금 전쟁터에 와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산을 올랐고 산마루에 다다랐을 때, 다른 병사가 나타나 깊은 참호를 지나 모래주머니로 만든 작은 벙커로 나를 안내했습니다. 벙커에는 아군과 적군 사이 골짜기를 향해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이 나의 근무지였고 내 임무는 기관총에서 탄약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곡을 감시하고 적들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매우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심했습니다. 장기간 여정으로 인해 굉장히 피곤했지만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사기만 떨어질 뿐이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되, 정신을 차리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여가시간이면 나는 편지를 쓰거나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참으로 반가웠고, 병사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보낸 간식과 새로운 소식을 함께 나누곤 하였습니다. 전쟁터에서 함께 지내면서 우리는 각별한 전우애를 쌓아갔고, 필요할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나는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재빠르게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군복을 입은 채 땅 위에 침낭을 놓고 잤습니다. 처음 밖에서 자던 날,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나의 가슴팍 위에 올라가는 바람에 잠에서 깼습니다. 이 쥐는 코를 킁킁거리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는데 내가 깨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침낭 틈새로 나온 내 코를 물었을 것입니다. 나는 쥐한테 물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쥐가 나타나면 언제든 쏠 수 있도록 권총을 쥐고 자기 시작했습니다. 야밤의 총격전은 형형색색의 축제와도 같았는데 적색 예광탄 이 양쪽으로 날아다니고 백린 연막탄이 어두운 밤하늘을 뿌옇게 수놓았습니다. 포탄들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머리위로 날아다녔고 내 벙커가 다음 번 표적이 되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긴장의 연속 속에서 나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감정적 건강은 피폐해져만 갔습니다. 하루는 공격을 받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병사 두 명의 시신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참호로 포탄이 대폭 투하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명이 사라진 몸뚱이를 보면 마음이 아팠고,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의 희생에 대한 애도의 표현으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정말 놀랬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달빛도 없이 깜깜한 밤에 보초를 섰는데 너무 어두워서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공산군 특전단이 우리 벙커에 몰래 접근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잔뜩 긴장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재빨리 수류탄을 던졌는데, 알고 보니 적군이 침범하면 소리가 나도록 철조망에 걸어둔 빈 깡통을 쥐들이 건드려서 난 소리였습니다. 전쟁의 압력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본 어떤 병사는 미치광이로 돌변하여 눈을 부릅뜨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꼭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겨서 정신이 붕괴된 사람 같았습니다. 강제로 입혀놓은 구속복에 갇혀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끔찍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름에는 뜨거운 더위 속에서 겨울에는 얼음장 같은 추위 속에서 보초를 서고, 통조림으로 된 ‘C-레이션’ 이라는 식량을 먹고, 비좁은 벙커 속 딱딱한 땅 위에서 잠을 자며 쥐들과 싸우고, 야외에 대충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을 이용하며, 오랫동안 목욕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진드기와 이 때문에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화학 살충제인 DDT 를 몸에 뿌려야 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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