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별협상은 여성에게 불리” 소송 이후 채용 때 일률 초봉 등 고정임금제 도입
▶ 반대론자 “능력 있는 인재 놓친다” 지적
[“소득불균형 심화”에 채택 잇달아]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라”
소셜 뉴스 사이트인 레딧닷컴(Reddit.com)이 초봉과 관련, 고용주와 담판을 지으려는 자사의 새내기 예비 직원들을 향해 던진 경고다.
레딧처럼 직원 채용 면접에서 임금협상을 허용하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인 제트닷컴(Jet.com), 테스트 준비 전문사 Magoosh 등이 가장 최근에 이 대열에 합류한 업체들이다.
이들은 입사 희망자에게 회사 측이 일률적으로 정한 초봉 액수를 제시한다. 흥정이나 타협은 없다. 회사의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 면접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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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가 직원들의 임금수준을 사전에 결정하는 보수체계는 극심한 임금 불평등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실리콘밸리가 고심 끝에 마련한 시범적 개선책이다.
지난 2000년 거품붕괴를 일으켰던 실리콘밸리는 위기를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했고, 덕분에 요즘은 경기과열이 우려될 정도로 잘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실리콘밸리가 또다시 거품으로 뒤덮일까 경계하는 시각은 거의 없다. 반면 인종과 성에 따른 임금격차와 불균등한 소득 성장이 불러온 심각한 빈부 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는 약 5만8,000개의 일자리를 추가하며 전년 대비 4.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국의 평균 일자리 증가율은 1.8%에 그쳤다. 또 이 지역의 연 평균소득은 11만6,033달러로 미국 전체 평균치인 6만1,489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2015년 실리콘밸리 인덱스가 전하는 좋은 소식은 거기까지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이 한층 심화됐다.
2014년 중간 값을 기준한 실리콘밸리의 최고임금과 최저임금 사이의 평균 차이는 9만2,000달러로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의 7만달러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위권의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는 2001년 이후 무려 4.5%가 줄어들었다.
인종별 임금 격차도 확대됐다, 2015 실리콘밸리 인덱스에 따르면 백인과 흑인 근로자의 임금격차는 연봉기준으로 4만달러 선이고, 백인과 라티노 사이의 연봉차이는 4만4,000달러 정도다. 미국 전역의 인종 간 평균 소득 격차인 1만 8,000달러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최근 문제가 된 것은 남녀 봉급의 현격한 수준차이다. 학사학위를 가진 근로자의 경우, 남성 평균 소득이 여성 평균치보다 61%나 높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찰음이 터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실리콘밸리 내부에서 일고 있는 봉급체계 개정은 ‘엘렌 파오’ 소송을 거치면서 가속화됐다.
개별 임금협상에서 번번이 물을 먹으며 몇 차례 승진인사에서 누락된 엘렌 파오는 2012년 고용주인 벤처투자기업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 인 클라이너’ 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였다.
파오는 자신보다 실적이 나쁜 남성들이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고 회사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소송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미운털이 박혀 회사에서 잘리고 말았다. 파오는 지난 3월30일 패소판결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겨 레딧의 대표이사 서리로 활동 중인 파오는 개별 임금협상은 여성에게 특히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여성은 남성만큼 강하고 담대하게 흥정하지 못하고, 승진과 봉급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오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는 동일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며 “우리는 공평한 경쟁의 장을 원한다”고 말했다.
사실 성차별의 근본원인은 IT 산업 종사자 중 여성의 수가 절대적, 상대적으로 적다는 데에 있다. 소수이다 보니 기업 안에서 힘쓸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결국 성별 임금 격차와 유리천장이 생기게 된다.
실리콘밸리를 뒤흔든 파오의 소송을 계기로 IT 업계가 남성 전용 클럽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많은 경영주들은 임금체계 변경을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들었다.
이들은 “개별협상을 통해 초봉을 책정하는 관례를 폐기함으로써 사내 임금체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여성의 잠재적 불이익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직급별 호봉제를 지지하고 나섰다.
물론 보수체계 개정 바람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레딧의 사내 게시판 이용자 가운데 한 명은 “외부의 눈총을 의식,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회사가 남녀 구성비 확보를 위해 능력에 바탕을 둔 보수 산정을 포기했다”고 꼬집었다. 에이온휴잇의 임금 컨설팅 총책인 케난 아보쉬도 “A-급 선수들은 임금협상을 배제한 회사를 멀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여성 근로자들의 임금 협상력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카네기 멜론대학의 경제학과 교수 린다 밥콕은 “기업들이 표준화된 초봉제를 철저히 시행한다면 남녀 간의 임금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지만 예외를 허용할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이 고정 임금제를 수용한 상황에서 남성들이 예외조항에 기대어 ‘각개전투’에 벌인다면 남녀 간 임금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전체 업종 가운데 매니지먼트 컨설팅사, 법률회사, 관공서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비슷한 자격조건을 지닌 인력들이 같은 시기에 대규모로 입사하기 때문에 페이 레벨을 개인협상을 통해 책정하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이들 이외의 직종에서는 개별협상이 관례다.
Magoosh는 분기별로 직원들의 봉급을 시장가격과 비교해 검토한다. 비슷한 규모인 동종 업체들을 대상으로 임금 서베이를 하거나 에인제리스트 웹사이트를 뒤져 업계의 봉급수준을 살펴본다.
회사의 실적이 일정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든지 시장의 전반적인 봉급수준이 올랐을 경우 임금인상을 단행한다. 물론 승진을 하면 해당 직원의 보수는 미리 정해진 직급별 호봉에 따라 상향 조정된다.
온라인 소매 사이트 다이어퍼스닷컴(Diapers.com)의 모기업인 퀴드시(Quidsi) 창업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로어가 세운 전자상거래 업체 제트닷컴의 매니저들은 자사 직원들에게 Linkedin을 뒤져 같은 직급에 속한 다른 회사 종업원들의 소득을 알아보라고 권유한다. 호봉제를 실시한다 해서 봉급수준이 동종업체의 동급 직원들에 비해 더 낮지 않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해 보라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제트닷컴의 공급체인 부디렉터로 입사한 조 마리켈은 “직원들과의 줄다리기 임금 흥정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내 본연의 업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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