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해시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에서 주민들이 삭발식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했을까. 이들은 김해시의 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이다. 조합추진위원회와 사업대행사가 허위·과장광고는 물론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진상해명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부산시에서도 한 지역에서 두 개의 지역주택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며 옥신각신하다 추진위원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규 아파트 분양시장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이에 편승해 지역주택조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지방은 물론 서울 등 수도권에서 자고 일어나면 한 곳씩 생길 정도다. 문제는 지역주택조합제도는 위의 사례에서 보듯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역주택조합은 한 마디로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한데 모여 공동주택을 건립하는 제도다. 1977년에 도입됐으며 주택청약 관련 예금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고 조합원들이 직접 사업주체(시행사)가 돼 아파트를 짓는 제도다.
겉만 보면 조합원들이 직접 사업을 한다는 점에서 여러 이점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몇몇 사람이 형식적으로 초기 조합을 구성해 사업부지 일부만 매입한다. 그런 다음 시공사를 선정해 시공사와 함께 조합원을 추가 모집해 사업규모를 키우고 인허가를 진행한다. 몇몇 사람이 주도하는 형태이고 다수는 그냥 ‘조합원’이라는 타이틀만 쥐는 셈이다. 사업 진행과정에서 토지매입이 안 되거나 인허가 지연 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경우 그 피해가 전체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조합원들은 가입 당시 공신력 있는 시공사를 신뢰한다. 하지만 사업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시공사는 그냥 단순도급이다. 조합원들이 결국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런 점 때문에 지역주택조합이 대규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무더기로 발생한 ‘조합비리’ 사건이 그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반에도 지역조합아파트 피해사례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큰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수많은 물의 속에 지역주택조합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급물량 확대’ 정책 때문이었다. 주택 공급물량 확대정책과 맞물려 조합주택제도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뜸했던 지역주택조합이 최근 들어 다시 늘고 있다. 김해시만 해도 13곳에서 1만여가구가 지역주택조합으로 추진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지역주택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서희·한양건설 등 일부 중견 건설사는 아예 지역주택조합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건설사까지 뛰어들면서 지역주택조합이 때 아닌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부동산 신탁사 보증 등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지만 문제의 근본은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몇몇 사람의 주도 하에 조합원을 모집해 돈을 모으고 부지 매입 등 사업을 밟고 있다.
다수의 조합원들은 돈을 냈는데도 그 흔한 토지권리 등기조차 할 수 없다. 초기사업을 주도하는 ‘몇몇 사람’들의 정확한 실체조차 모른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며, 어떻게 사업을 추진하게 됐으며, 또 시공사와는 어떻게 시공계약을 체결했는지 등 여전히 파악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에서 시공사의 위치와 역할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지자체 한 고위 관계자는 “없어져야 될 제도가 왜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또 한 번 지역주택조합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날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미 일선 지자체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역주택조합과 관련된 민원이 끊임없이 쇄도하고 있어서다. 서울시는 물론 지자체들이 국토교통부에 지역주택조합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을 정도로 일선 지자체가 느끼는 위험성은 더 크다.
국토부는 현재 지역주택조합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의 결과는 뻔하다. 사실 지역주택조합은 과거 주택공급량이 부족했을 때 생겨난 기형적인 제도다. 현재처럼 주택 공급물량이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오른 상황에서는 필요 없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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