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출신으로 1940~6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인 모린 오하라가 24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오하라는 이날 아이다호 주에 있는 자택에서 95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슬프게도 모린 오하라가 오늘 잠을 자다가 그대로 영면한 사실을 전해들인다.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에 둘러싸여 편안히 떠났다. 모두 그녀가 제일 좋아하던 영화 ‘말없는 사나이’의 주제곡을 들으며 그녀의 일생을 축복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난 오하라는 6살 때 연기를 시작했으며 극단 아역으로 두각을 나타내다가 1938년 런던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암굴의 여왕’으로 정식스크린에 데뷔했다.
할리우드 제작자의 눈에 띠어 1939년에는 ‘노트르담의 꼽추’의 여주인공에 출연차 미국으로 진출했다.
오하라는 1941년 거장 존 포드 감독이 연출해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휩쓴 명화 ‘나의 계곡을 푸르렀다’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대표작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말없는 사나이(1953년), 서부극 ‘빅제이크’와 ‘맥린턱’, 리오 그란데 등으로 모두 거장 존 포드가 감독을 맡았고, 오하라가 히로인으로 열연했다.
‘말없는 사나이’와 여러 서부극에선 명배우 존 웨인과 호흡을 맞춰 전 세계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또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둘러싼 소동을 소재로 한 1947년작 ‘34번가의 기적’에서 백화점 중역으로 일하는 싱글맘 역할을 맡아 현대적인 여성상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아직도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미 TV들이 방송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오하라는 1971년부터 20년 가까이 활동을 쉬다가 1991년 ‘온리 더 론리’로 복귀해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1995년 찍은 ‘크리스마스 박스’가 마지막 작품이 됐다.
출연작은 50여 편에 달하며 2014년 평생 영화에 기여한 공로로 아카데미 명예상을 받았다.
<이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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