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둑한 여성의 지갑 노려, 로보-어드바이저 내년 출범
▶ 남성 중심 재정관리 탈피, 비부유층에 저가 서비스, 적은 자금·채무 빠져 한계
말하는 틴에이지 바비 인형이 입방정으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벌써 20여년 전인 1992년, 장난감점에 첫 선을 보인 사춘기 소녀 인형은 “수학시간이 너무 벅차다”고 하소연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내 녀석에 비해 계집아이의 수학실력이 떨어진다는 그릇된 통념을 부채질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이 들끓자 제작사인 마텔은 부랴부랴 인형을 회수해 내장된 어휘 가운데 부적절한 단어들을 삭제해 버렸다.
오늘날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 역할’이 불분명해지면서 기업들은 행여 시대착오적인 성 고정관념(gender stereotype)의 늪에 빠질세라 바짝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런 상황에서 2개의 여성전용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er) 업체가 내년에 첫 선을 보일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온라인을 통해 재무상담과 투자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일컫는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파워는 점차 강해지는 추세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탓에 집안 대소사, 그 중에서도 특히 가계문제에 대한 여성의 발언권이 커졌다.
학력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현재 재학 중인 여성의 비율은 남성에 비해 높다.
또 리서치 전문 업체인 탤런트 이노베이션 센터에 따르면 총 11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가능 자산을 컨트롤하는 결정권을 여성이 행사한다.
이처럼 우먼파워가 기세를 올리는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 전용 로보-어드바이저가 출범한다는 소식은 뜻밖이다.
투자와 관련해 특별한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여성들이 셈을 잘 못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회사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날수록 두둑해지는 여성의 지갑을 노린,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온라인 재정상담 업체에 불과한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큰손 투자자들이 이들 뒤에 병풍처럼 버티고 선 것으로 보아 그리 허술한 로보-어드바이저는 아닐 듯싶은데 ‘여성 전용’이라는 수식어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수학과목이 힘들다”던 틴에이지 바비 인형이 그랬듯 성 중립시대에 걸맞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도 여성 전용 로보-어드바이저의 출범예고는 금융업계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했다.
내년 모습을 드러낼 2개사 가운데 첫 번째 로보-어드바이저의 명칭은 월드 파이낸셜 매니지먼트다.
120만명의 여성 가입자들에게 매일 금전과 관련한 이메일을 띄우는 투자상담 및 관리사 데일리워스(DailyWorth)의 창업주 아만다 스타인버그와 수백만명의 이혼여성에게 재정 조언을 해주는 소스 파이낸셜 어드바이저스의 소유주 미셸 스미스가 공동 창업주다.
스타인버그는 이 회사의 설립 취지를 묻는 질문에 “재정관리라는 측면에서 여성에게 추가의 도움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다”고 분명하게 구획정리를 한 후 “그보다는 지난 7년간 여성 가입자들과 나눈 대화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보아 달라”고 주문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성 전용 업체의 존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스타인버그는 자신의 상담 서비스 가입자들을 “평균 38세의 나이에 7만8,000달러의 연소득을 올리는 커리어우먼”으로 소개했다.
스타인버그는 “내 임무는 여성 가입자들에게 그들의 순 자산을 키울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디너파티 식탁용 꽃을 살 때 10달러를 에누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예산을 절약하는 훈련을 시키려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에게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수입에 미치지 못한다. 일을 도중에서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남성에 비해 평균수명이 길다.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남성 중심적인 직장의 내규와 정부의 정책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월스트릿의 잘 나가던 금융인인 샐리 크로첵이 로보-어드바이저 사업에 뛰어든 이유도 여성들이 이 같은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최근 그녀는 여성 전용 로보-어드바이저인 엘레베스트를 내년에 출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2년 ‘정직성을 갖춘 이 시대의 마지막 애널리스트’로 선정돼 포천지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크로첵은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시티그룹에서 고위 간부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공동 창업주인 찰리 크롤과 함께 엘레베스트의 종자돈인 1,000만달러의 창업 투자금과 함께 금융권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스타플레이어들을 대거 확보했다.
크로첵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비부유층 여성 고객들에게 그들이 얻기 힘든 포괄적인 저가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추측이 지배적이다.
크로첵은 워스에프엠(WorthFM)이라 명명될 로보-어드바이저의 여성 임원들은 전원 이혼녀거나 싱글 맘으로 멈춰 세울 수 없는 사업가적 기질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이혼녀 일색인 투자자들로부터 이미 200만달러의 투자금을 거둬들였다.
워스에프엠은 투자금이 50만달러 미만인 ‘부유한 대중’에 포커스를 맞출 계획이다. 이 정도 투자금은 휴먼 어드바이저의 관심을 끌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로보-어드바이저와 달리 휴먼 어드바이저는 관리자산의 1%를 기본 수수료로 챙긴다.
그러나 워스에프엠식 고객 접근방식의 불가결한 부분은 휴먼 어드바이저의 방식과 유사하다. 돈 관리에 앞서 인간적인 관계형성에 주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로봇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크로첵은 “우리가 고객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함으로써 온라인상에서 상호신뢰적인 관계형성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그러려면 고객의 금전관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크로첵은 심리학자들의 힘을 빌려 공동으로 개발한 40개 문항의 설문지를 고객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설문지는 고객이 어떤 ‘머니 타입’에 속했는지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한 도구다.
서베이 결과는 개별 고객의 돈에 대한 관점과 돈과의 행동방정식(behavioral relationship)을 보여줄 것으로 크로첵은 기대하고 있다.
서베이 결과를 분석해 보면 고객들이 다섯 개의 기본타입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지 아니면 이들의 특성을 조금씩 꿰맞춘 다양한 조합형 타입에 속하는지 판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얻어낸 개인 타입에 자신이 처한 재정환경과 재무지식의 정도를 투영한 항목들을 선택하며 경로별 이동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맞춤형 투자조언을 얻게 된다.
스타인버그는 5년에 걸쳐 고객의 순자산이 30% 이상 늘어났느냐를 성공을 측정하는 유일한 잣대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순자산을 늘린다는 것은 결국 빚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로보-어드바이저의 최대 약점은 휴먼 어드바이저처럼 고객의 재정상태를 총괄적으로 보여주는 전체 그림이 아니라 그가 제공하는 몇 개의 투자 어카운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재정상태에 관한 조언을 하려면 채무관리까지 포함해야 하는데 로보-아드바이저는 투자관리에만 집중한다.
워스에프앰은 다른 로보-어드바이저들과 마찬가지로 전체 투자가능 자산의 0.15에서 0.50에 이르는 포괄적 수수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그러나 워스애프앰은 아직 규제당국에 수수료 책정 자료를 넘기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내놓은 2009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지갑을 잡는 금융기관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재무상담 업체들이 여성들을 제대로 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 분야의 거목인 베터먼트와 웰스프론트 등은 각기 30억달러의 투자금을 관리하지만 대부분의 고객이 남성이다.
물론 워스에프앰과 엘레베스트가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첫 번째 투자관리 서비스사는 아니다.
20009년 여성을 겨냥한 예산편성 도우미 웹사이트로 출발한 런베스트가 있긴 하지만 이 회사는 고객기반 확대를 위해 남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했고 지난 3월 노스웨스턴 뮤추얼에 합병됐다.
뱅가드의 선임 연구원 진 영은 “최근 401(k) 투자관리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저축을 많이 할 뿐 아니라 더 나은 투자자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단지 문제는 남성의 어카운트 평균 잔고액이 여성에 비해 50%나 많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소득 격차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며 “이 문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풀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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