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실직자 테크놀러지 취약, 현장서 채용 꺼리는 걸림돌, 커뮤니티 칼리지 등 수강을
▶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지식·인맥 쌓는 방법 등 다양 새 커리어 도전, 기대치 낮춰야
로산나 호턴(55)은 장장 5년을 백수, 혹은 반 백수로 지냈다.
UC 어바인의 일자리를 내려놓고 박사학위 논문작성과 노모의 병구완을 위해 겸사겸사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것이 2007년의 일이었다.
UC 어바인을 뜨면서 전 재산인 콘도미니엄도 처분했다. 그 정도 현찰을 쥐고 있으면 논문을 끝내고 새로운 직장을 잡을 때까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일단 박사학위를 손에 쥐고 나면 쉽사리 이전보다 더 좋은 직장을 잡게 될 것으로 그녀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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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로 옮겨 간지 1년반만에 그녀는 논문을 마쳤고 교육학 박사학위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당시 경기 대침체의 한복판에 놓여 있던 노동시장의 상황은 재앙 수준이었다. 그토록 믿었던 박사학위는 구직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그녀는 한동안 친척과 친구의 집을 전전하며 잠자리를 해결하는 ‘소파 서핑’(sofa surfing)에 의존해야 했다.
“애초 일을 그만둔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때늦은 후회가 들이닥쳤지만 자책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를 도와주는 친지들의 수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견디다 못한 호턴은 2013년 9월, 구직자들을 위해 기술을 가르치고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샌프란시스코 유대인 직업훈련원’에 등록했다.
리세션은 이미 오래 전에 막을 내렸으나 급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그럴 듯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호턴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렵게 취득한 박사학위가 재취업에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는 번갯불 같은 깨우침을 얻었다.
그녀는 이력서에서 박사학위에 관한 모든 언급을 말끔히 지웠다. 지원한 일자리에 비해 턱없이 높은 자격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문 안으로 한 발을 들이밀고 보는 세일즈맨의 전술을 채택한 셈이다.
2014년 초 호턴은 UC 샌프란시스코 대학병원의 방사선·생체의학 이미지 과장으로 채용됐다.
페이 수준도 만족스러웠다. 호턴의 현 급여수준은 2007년도에 박차고 나온 마지막 직장에 비해 훨씬 높다. 그녀의 소원은 취업 일선 복귀에서 70세까지 일하기로 바뀌었다.
2007년 말부터 시작된 경기침체가 2009년 중반까지 이어지면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50대와 60대의 노동자들이 레이오프를 당하거나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가을바람 앞의 낙엽처럼, 한방에 훅 날아간 근로자들은 연명형 생계대책조차 없는 막막한 상황으로 몰렸다.
보스턴대학의 은퇴연구센터는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2009년에 끝난 리세션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경기침체기에 비해 50세 이상의 실직자들을 훨씬 많이 양산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은퇴연구센터의 노동전문 경제학자인 매튜 럿리지는 “리세션이 완전히 끝난 2012년에도 이들 중 상당수는 실직상태에 놓여 있었다”며 “은퇴를 했건 아니면 레이오프를 당했건 50세 이상의 실직자들이 노동현장으로 복구하기는 지극히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은 하락했고 주택시장 붕괴는 미국인들의 재정상태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실직자들은 구직을 위해 아우성을 쳤고, 제 밥그릇을 지켜낸 사람들은 은퇴계획을 늦추었다.
그 결과는 노동인력의 고령화로 나타났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상근 학자이자 소셜시큐리티국 최고위직 출신인 앤드류 빅스는 현재 60세에서 64세 사이의 근로인구는 2005년에 비해 390만명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2005년은 리세션 이전의 마지막 경기둔화가 풀리기 시작한 해이다.
반면 20세에서 55세 이하의 근로인구는 2005년에 비해 쪼그라들었다.
나이든 실직자가 풀타임 일자리로 복귀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독자적으로 컨설팅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특화된 지식을 쌓고 새로운 인맥을 구축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온라인 코스나 사설대학, 혹은 커뮤니티 칼리지 등지에서 취업에 필요한 새로운 스킬을 연마하는 실직자들도 적지 않다. 물론 창업도 노동일선 복귀의 방편으로 자주 활용된다.
장기실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 가장 큰 도전은 일터에서 요구하는 기술을 필요한 수준까지 업데이트하는 일이다.
실직이나 은퇴기간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업무처리에 필요한 기술에 녹이 슬게 마련이다. 일자리를 떠나 있는 기간 새로운 테크놀러지가 도입된 경우도 있다.
인력관리 소사이어티의 연계단체인 SHRM 재단의 마크 슈밋 사무국장은 “이 때문에 실직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동년배를 비롯한 ‘현직’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고 지적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카운슬링 및 커리어 계발담당 교수인 리치 펠러는 “일선 복귀에 필요한 최대의 자격증은 자신의 테크놀러지 기술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한 문서”라고 말했다. 고용주들은 첨단기술을 능숙히 다루는 사람의 경우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최선의 경로로 커뮤니티 칼리지와 온라인 코스를 추천했다.
슈밋은 “나이든 사람에 비해 젊은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통설은 허구에 불과하다”며 “이런 속설이 통하는 곳은 육체노동 분야 정도다”고 말했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묘기를 가르칠 수 없다’는 속담은 고리타분한 헛소리다. 나이든 사람도 젊은이 못지않게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려는 의욕은 오히려 더 강하다.
일자리를 잃은 가장은 필사적이다. 이처럼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사람은 무엇이건 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30년간 세일즈 분야에서 일해 온 도터무슈(58)는 2년 전 실직한 후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심심풀이 삼아” 몽고메리 칼리지에 등록해 테크놀러지와 관련한 과목들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5개월 전 그는 워싱턴 인근의 테크놀러지 업체에서 웹 개발자로 채용됐다. 물론 학교에서 딴 자격증이 재취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워싱턴 교외에 위치한 커뮤니티 칼리지인 몽고메리 칼리지의 스티브 그린필드 인력개발 및 평생교육 담당 학장은 “학생들은 고졸자이건 박사학위 소유자이건 학력에 상관없이 직장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원한다”며 “이들은 한결 같이 시장조사를 한 후 필요한 코스를 택한다”고 전했다. 그린필드 학장은 학교 측 역시 클래스를 개설하기에 앞서 “취업을 하기 위해 학생들이 어떤 스킬을 습득해야 하는지 시장조사부터 실시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훈련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네트워킹, 곧 인맥 구축이다.
도터무슈는 “직장을 소개해 주거나 지망회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줄 사람과 교류가 있다면 해당회사에 접근하는데 그보다 나은 경로가 달리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이전과 다른 업종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면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게 슈밋의 권고다.
한마디로 재교육을 받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이전보다 급여수준이 낮아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30년간 커미션만 받는 조건으로 부동산 브로커로 활동해온 데이빗 구스타폰(61)에게 타주로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뉴욕에서 콜로라도주로 이주한 그는 현지의 부동산 브로커 라이선스 취득시험에 대비해 5주짜리 시험 준비반에 등록했다.
지난 6월 말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그는 현지 부동산업체에 취업했다.
과거에도 부동산 세일즈 분야에서 근무했지만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사용하는 테크닉을 배우기 위해선 평생에 걸쳐 축적된 업무습관부터 버려야 했다.
재취업을 원하는 나이든 실직자에게 그가 던지는 충고는 아주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건 유연성이죠. 과거의 습관이나 버릇에 사로잡혀선 안 돼요. 무엇보다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려고 노력해야죠. 과거의 방식에 집착하면 노동시장에서 도태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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