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언장·트러스트 작성 대신 본인 소망·자녀에 대한 충고 글·동영상 남기는 ‘드랍박스’
▶ 상속자에 사후 모든 접근권 유산상속 걸림돌 될 수도
■ 디지털 자산 남기기 새롭게 각광아미람 하야르데니(53)의 선친은우렁찬 목소리에 큰 체구를 지닌 혈기왕성한상남자였다. 적어도 루게릭병으로 알려진근위축성 측색경화증에 걸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질환인루게릭병에 걸린 후 그는 서서히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했고, 급기야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전신마비 상태로 빠져들었다.
희망 없는 투병생활 끝에 그는 2013년 타계했다.
그로부터 1년 뒤 하야르데니는 동갑내기 사촌을잃어버렸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린 세 자녀와남편을 뒤로 한 채 52의 아까운 나이에속절없이 세상을 떴다.
아버지와 사촌여동생을 잇따라 잃은하야르데니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테크놀러지스트인하야르데니는 자신의 죽음에 관해 생각하기시작했고,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넘겨주어야할 것인지 되묻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친척이나 친구가 세상을 뜬 뒤 주변정리와점검에 나선 수많은 50대 남성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유언장, 트러스트, 상속 수혜자 지명양식등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상속설계 전략 대신그는 세이프비욘드(SafeBeyond)라 불리는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한다.
세이프비욘드는 사용자가 서면, 혹은 비디오로 밝힌 소망을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남의 눈을 타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시스템이다. 공개 시기는 꼭 사망 후가 아니라 사전에 정해둔 시점이 될 수도 있다.
사후 드랍박스에 비유되는 세이프비욘드는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으로 비슷비슷한 종류가 여러 개 나와 있다.
하야르데니는 “개인적으로 죽음을 특별히 두려워하지 않고, 사망에 관한 논의도 터놓고 하는 편”이라며 “세이프비욘드 사이트는 ‘내가 떠난 다음’이라는 컨셉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사들과 유산 설계사들은 세이프비욘드와 같은 서비스가 비교적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적절히 사용하지 않을 경우 상속자들에게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이프비욘드와 같은 종류의 서비스는 확실하게 이름이 명기된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극히 사적인 온라인 사이트라는 점에서 유산으로 남겨진 디지털 자산에 관한 광범위한 이슈를 제기한다.
이와 관련, 윌밍턴 트러스트의 매니징 디렉터인 샤론 클라인은 “디지털 자산의 경우 누가 접근권을 갖느냐가 최대 이슈”라고 설명했다.
먼저 세이프비욘드의 백그라운드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이 서비스를 시작한 주인공 모란 주르는 25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었고 2012년에는 아내마저 뇌종양에 내어줄 뻔했다.
아내의 건강이 호전되자 주르는 사이트 개설을 위한 기금을 모금했다.
처음부터 주르는 사용자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세이프비욘드의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우러나온 감정과 조언을 담아두는 일종의 ‘정서은행’을 염두에 두고 사이트를 제작했다.
주르는 “내게 세이프비욘드는 감정적 생명보험”이라며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지 스스로 결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사이트가 지니는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세이프비욘드를 운영하려면 먼저 신탁인을 지명해야 한다.
신탁인은 세이프비욘드에 남겨진 글이나 동영상을 넘겨주기 위해 사용자의 가족과 친구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을 담당한다.
쉬운 일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사용자가 남긴 가족과 친지의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는 실제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때쯤이면 이미 바뀌었거나 서비스가 중단된 이후이기 일쑤다.
사이트 이용은 아직까지는 무료다. 주르는 사용자들이 좀 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디지털 유산설계 툴도 온라인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세이프비욘드의 경쟁자로는 마이클 맥클루니가 공동 창업한 인큐베이트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은 맥클루니는 “인생의 이정표적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충고를 아버지가 동영상으로 기록해 남겨주었다면 너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이트 출범에 앞서 지난해 추수감사절 그는 할머니가 보내는 할러데이 소망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할머니는 올해 숨졌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사전에 정한 시점에 6명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전달된다.
세이프비욘드 서비스는 사용자가 숨진 뒤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속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돕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런 메시지가 수령자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부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메시지 녹음을 소중하게 여기겠지만 소름끼치는 일로 여길 사람도 있다.
하야르데니도 자녀들이 충격을 받을 것 같아 자신의 비디오 영상은 만들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잘 생기고 건장한 남성으로 마지막 날까지 머리숱을 그대로 유지했던 분이었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병마에 찌든 그의 얼굴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게 변했다.
“그 흉한 모습이 내가 가진 아버지의 기억”이라고 밝힌 하야르데니는 가족을 위해 단지 서면 메시지만 남겨 놓을 계획이다.
홀랜드 & 나잇의 파트너인 존 다다키스는 상속자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비디오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유산문제로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선 동영상 메시지를 달갑지 않게 여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세이프비욘드의 목적은 사용자가 원하는 때에 개인적 메시지를 기록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기술적 양식들이 그러하듯 의도되지 않은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고, 바로 이것이 유산상속 변호사가 우려하는 점이다.
재벌가 상속녀인 위게트 클라크의 유산을 둘러싼 장기 법적분쟁에 연루된 다다키스는 비디오를 통해 상속자에게 분명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주는 방식의 이점을 분명하게 보았다고 밝혔다. 클라크는 은둔상태로 지내다 약 3억 달러의 재산을 남겨 두고 직계 상속인이 없이 사망한 구리 재벌가문의 유일한 상속녀였다.
그러나 동영상 메시지는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많다는 것이 다다키스의 주장이다.
변호사들은 유언장에 쓰기엔 적절하지 않은 감정적 메시지를 담기두기 위해 ‘희망 서한’ 작성을 선호한다. “1년에 열두 번씩 유언장을 업데이트하기 보다는 희망서한에 내 개인적 물품을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분배하라고 적어두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종류의 편지는 자녀나 손주들에게 인생의 목표 등에 관한 메시지를 남기는데 적절한 방식이다.
어드바이저들은 소셜미디어 계좌에서 위탁계좌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디지털 자산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계좌 개설자 사망 때 누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접근권을 행사할지 지명해 두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소셜미디어 계좌의 서비스 약관에 따라 개설자 사망 때 계좌는 폐쇄된다. 그러나 패스워드를 몰라 계좌 사용을 금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모든 스테이트먼트가 전산화되어 있을 경우 계좌의 존재 자체를 알아내기조차 힘들다.
가족들의 디지털 자산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마이레니엄의 수석 디지털 집행인 러스 하프트는 “집행인에게 가치 있는 디지털 자산이 무엇인지 일러주고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기 원하는지 방향을 미리 제시해 주며 패스워드에 접근하는 메커니즘을 일러주라”고 조언한다. 또한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한 서비스에 관한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디지털 자산 대한 접근권을 얻기 위해 상속인들이 우르르 법원으로 달려가는 진풍경이 연출될 수도 있다.
주르는 그가 만든 사이트는 아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방편이라고 말한다.
“내가 죽으면 이 인터넷을 검색해 나에 관한 온갖 일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이프비욘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기억될지를 결정해주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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