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따뜻한 겨울 처음-모피·코트·부츠 등 제품 안 팔려 재고더미 쌓여
▶ 날씨예상 완전 빗나간 탓 패스트패션은 수익 짭짤
“따뜻한 날씨가 원수다”미국의 ‘냉장고’로 꼽히는 동북부 지역의 이상기온으로 팔리지 않는 겨울옷 재고더미에 올라앉은 의류업자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뉴욕 맨해턴에서 고급 모피 도매점‘코니시 퍼즈’(Corniche Furs)를 운영하는 스튜어트 그린버그는 가벼운 코트와 재킷 차림으로 헤럴드 스퀘어를 누비는 인파를 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장사를 시작한 후 첫 10년간 날씨 따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며 “뉴욕의 겨울은 늘 매섭게 추웠다”고 회고했다.
코니스 퍼즈의 비즈니스는 이번 달 30%의 매상 감소를 기록했다.
그나마 꾸준히 나가는 제품은 소매 없이 몸과 팔만 감싸는 망토와 조끼, 가장자리에 털을 댄 레인코트와 가벼운 모피제품 정도다.
이들 모두 방한보다 패션 쪽에 초점을 맞춘 옷들이다.
그린버그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10일치 기상예보부터 살펴본다. 수은주의 높이에 연말시즌의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바닥에서 20년간 영업을 해왔지만 이렇게 따뜻한 12월을 겪어본 적이 없다”며 “이젠 기상 전문가라도 영입해야 할 판”이라고 푸념했다.
계절의 변화는 불변의 상수에서 소매업체들이 세워놓은 연말 세일즈 전략을 거꾸로 뒤집어놓는 위험변수로 돌변했다.
할러데이 시즌이 낀 4분기는 이전의 3개 분기에 비해 소매 의류상의 매상이 몇 퍼센트 더 올라가는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크고 작은 소매업체들은 기상분석 자료 활용도를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12월의 이상고온을 예견하는데 실패한 탓에 대목장을 망쳤다고 투덜댔다.
현재 동부 연안 일부 지역의 수은주는 화씨 60도 위쪽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자 시들던 장미가 다시 피었고 여느 때 같았으면 벌써 길가에 떨어졌을 꽃들이 아직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가지에 붙어 있다.
이런 날씨에 두꺼운 겨울 코트를 찾는 샤핑객들이 있을 리 없다.
전국 규모의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즈는 3분기 매출부진으로 잔뜩 쌓인 겨울옷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파격적인 세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애널리스트들은 노스트롬의 부진한 분기 실적 역시 날씨 탓으로 돌렸다.
지난 3분기에 무려 7억6,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뒤 겨울장사에 올 인한 J. 크루도 이상고온에 결정타를 맞았다.
갭의 최고경영자인 아트 펙은 3분기 순매상이 감소했다고 발표한 후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올해 10월은 사상 가장 따뜻한 10월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동부의 기온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것이 소비자들이 스웨터와 방한복을 멀리하는 분명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소매업체들이 기후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250개사에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플래너리틱스는 뉴욕의 여성용 부츠 판매고가 12월 전반부에만 24%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이상기온으로 인해 전국의 부츠와 양포제품 판매는 각각 3% 축소됐다. 모자와 장갑, 스카프 판매량 역시 2%가 줄었다.
플래너리틱스는 이전의 판매고와 기후패턴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기온변동과 다른 기후변화가 매상에 타격을 주는지, 혹은 도와주는지를 분석했다.
플래너리틱스의 사장인 스캇 번하트는 지난해 길고 추운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소매업주들은 올해 날씨도 전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판단에 동복을 대량 입하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패턴 변화가 워낙 심해 이전의 날씨 분석은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는데 더 이상 좋은 길잡이가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번하트는 “지난해 11월에는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외투가 일찌감치 품절됐고 이로 인해 미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소매상들이 패닉상태에 빠졌다”며 “혼쭐이 난 이들은 기후자료와 상관없이 전년의 경험에 바탕해 방한복과 외투를 확보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산더미 같은 재고더미에 올라앉게 됐다”고 말했다.
소매 의류업체들은 기후패턴을 추적하는데 이전보다 공을 들이는 게 사실이다. 2004년 이후 할인 소매체인점인 ‘타겟’(Target)은 기상팀을 꾸려 역사적 기후패턴을 살피고 상품의 재고가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을 막으려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부 뉴욕 소매업체들은 스타트-업인 ‘스톰 익스체인지’로부터 날씨보험을 구입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뉴욕시의 12월 기온이 역대 평균치를 상회할 경우 가입업체에 손실금을 보상해주었다.
그러나 2006년 문을 연 스톰 익스체인지는 창업 후 3년만에 영업을 접었다.
때마침 불어 닥친 호된 불경기 속에 운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H&M과 자라(Zara) 등 패스트패션 소매업체들은 다른 전통적인 의류업체들에 비해 이상고온 현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패스트패션은 계절에 맞춰 1년에 네 번 제품을 기획하는 일반 패션 브랜드와 달리 최신 트렌드와 소비자 반응에 맞춰 1~2주 단위로 빠르게 상품을 기획·생산해 판매한다.
불과 몇 주면 디자인한 상품을 매장에 내놓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자라는 겨울시즌 초반부에 특정 스타일이나 아이템에 주력하지 않는다.
자라의 모회사인 인다이텍스의 커뮤니케이션담당 최고책임자인 헤수스 에체바리아에 따르면 자라는 다양한 디자인을 소량으로 찍어내 전 세계 2,143개 매장에 내놓은 뒤 매일 현장 반응을 살펴 겨울시즌에 어떤 디자인에 주력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현재 뉴욕에 위치한 자라의 여러 매장에는 캐주얼한 판초와 함께 가벼운 재킷과 코트가 걸려 있다.
에체바리아는 “시즌 전반에 걸쳐 자라의 디자이너들은 고객들의 수요와 기호에 밀접하게 반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인다이텍스는 장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스페인의 유통센터에 가까운 곳에서 아이템을 생산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전 매장에 새로운 아이템을 배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라처럼 잽싸지 못한 일반 브랜드 의류업체들은 하늘만 바라보는 실정이다.
이들은 성탄절을 전후해 기온이 뚝 떨어질 것이라는 예보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웨더 컴퍼니’의 기후 전략가인 폴 월시는 날씨가 추워지면 아무래도 방한 아이템들에 고객들의 관심이 쏠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시는 설사 날씨가 추워진다 해도 소매업자들이 바닥을 친 매상과 이윤의 반전을 이루기엔 너무 늦었다는 비관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겨울이 오긴 오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지연됐다”는 지적이다.
코니시 퍼즈에게도 추운 날씨는 거북이걸음으로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다. 이 정도의 느림보 속도라면 손실을 만회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다.
그린버거는 수은주가 뚝 떨어지기 이전에는 많은 소매업 고객들이 도매상 창고에 쟁여놓은 모피를 찾아가려 들지조차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더 이상 여우, 너구리와 코요테 가죽으로 만든 펠트모자를 팔지 않는다. 수요가 없으니 팔고 싶어도 판매할 도리가 없다.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뉴욕에서 이런 제품들에 미련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대신 그는 가벼운 밍크와 브로드테일 코트를 판매할 예정이다.
그는 “불운하게도 난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며 “회계학 대신 차라리 기후를 전공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속옷 차림으로 정원으로 뛰어나가 기온부터 확인한다. 체감온도를 재어보는 셈이다.
그리곤 기도를 한다. 제발 날씨가 추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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