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C 웨스트민스터‘아시안 가든 몰’ 등 아시아계 늘며 LA·뉴욕 등 속속 등장
▶ 퓨전음식·고급화… 원조와 차별화도
LA에서 남쪽으로 35마일 떨어진 오렌지카운티 웨스트민스터의 ‘아시안 가든 몰’에는 주말마다 야시장이 들어선다.
이 지역의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몰 일대를 뒤덮는 독특한 음식냄새에 끌려 홀린 듯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하게 된다.
아시안 가든 몰(Asian Garden Mall)이라 적힌 붉은 대형 사인 아래로 뽀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오징어 굽는 구수한 냄새를 사방으로 실어 나른다. 오징어 구이집 바로 옆에는 꼬치감자집이 성업 중이다. 얇게 썬 쫄깃쫄깃한 구운 감자를 꼬치에 끼워 파는 이곳은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아시안 가든 몰을 찾을 때마다 오드리 딘(28)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들은 베트남 야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야시장은 생소한 개념이다. 주말 밤마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장이 열린다는 사실이 이들에겐 의아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직장일로 아시아 전역을 누비고 다닌 딘에게 야시장은 할머니의 옛날 얘기가 아니더라도 늘 친근하고 익숙한 장소다.
딘은 집에서 가까운 웨스트민스터의 야시장을 특히 좋아한다. 아시안 가든 몰에 천막을 치거나 손수레를 세워놓은 행상인들은 새우구이에서 코코넛 와플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인들의 즐겨먹는 음식들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야시장에 먹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값에 비해 질이 실한 커튼과 반짝반짝 빛을 내는 장난감 바람개비도 판매한다.
반죽한 쌀가루에 새우를 채워 넣어 만든 떡인 반 톰 코트를 주문한 딘은 “이곳에서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아시아가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 아시안 가든 몰과 유사한 야시장들이 여기저기 등장했다.
그 배경엔 급속히 팽창 중인 아시아계 인구와 정통 동남아 음식에 대한 미국인들의 점증하는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소수계로 전체 인구만도 1,940만 명을 헤아린다.
야시장은 지난 2010년 이후 시카고, 클리블랜드, LA 메트로 지역, 뉴욕시,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등지에서 속속 선을 보였다.
이들 중 일부는 가족들이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곳에서 역동성이 넘치는 아시아 지역의 야시장을 재창조하기 원하는 젊은 아시안-아메리칸에 의해 시작됐다.
처음에는 베트남과 대만 출신 이민자들만의 배타적 공간이었지만 다인종 커뮤니티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문화가 먹거리가 흘러들면서 지금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전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
LA에서 동쪽으로 약 10마일 떨어진 샌개브리얼 밸리에 626 나잇마켓을 설립한 자니 황(35)은 “대만의 야시장과는 다른 우리의 독자적 아이덴티티를 원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야시장 역사는 서기 600년께인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진화를 거듭한 야시장은 송 왕조 시대인 12세기에 이르면 각종 구이와 속을 채운 만두, 마른 과일 등을 판매하는 세련되고 잘 조직된 음식시장으로 자리를 굳힌다.
영국계 중국요리 전문가인 푸샤 던롭은 “유럽에 훨씬 앞서 중국에서 요식업이 처음 등장해 번창했다”고 밝혔다.
야시장은 현재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프르에는 매주 주말마다 95개 이상의 야시장이 선다.
고전적인 방콕의 야시장은 클럽에서 밤을 보내는 ‘야간족’을 겨냥, 이들이 선호하는 음식과 상품을 판매하는데 주력한다. 야간족은 비교적 넉넉한 중산층 가정에 속한 젊은이들이다.
자니 황을 비롯한 미국 내 나잇마켓 설립자들은 수천 명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야시장이 여러 개 등장한 것과 관련,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가 그들의 전통적인 독자 문화를 재해석해가면서 지역 문화에 어떻게 동화되는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대만계 미국인으로 LA 외곽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황은 자신과 가족들이 이질적인 음식과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쓴 사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황은 “가족 모두가 미국 음식을 즐기긴 했지만, 진정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세운 626 나잇마켓은 대만인들이 즐기는 정통 음식과 포 타코, 라면 버거 등과 같은 퓨전을 함께 제공한다.
그는 “전에는 친구들에게 냄새가 강한 두부요리를 시식해보라고 강권하지 않았다”며 “요즘 아시아인들은 맛있는 전통 요리에 대해 타인종들 역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오리지널 야시장들은 대체로 값싸고 시끄러운 장소로 통하지만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태어난 미국의 나잇마켓 가운데 일부는 격조를 높이는 것으로 원조와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유명 셰프이자 음식 탐험가인 앤소니 보데인이 뉴욕시에 오픈할 예정인 마켓은 아시아 야시장의 느낌을 주면서도 에이프릴 블룸필드를 비롯한 일류 요리사들이 직접 운영하는 코너를 설치함으로써 격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마켓들 역시 고급화로 기울고 있다.
이 중에는 입장료를 50달러로 책정한 곳도 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간 방문객들은 현지 최고의 셰프들이 만든 음식과 음료수 샘플을 시식할 수 있다.
야시장 레시피를 모은 책 ‘럭키 라이스’(Luck Rice)를 펴낸 대만 태생의 작가 대니앨리 창은 아시아 음식에 대한 열정을 자신이 주최하는 야시장 이벤트에 쏟아 붓고 있다. 그녀는 라스베가스에서 칵테일을 주제로 한 ‘시장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창은 “아시아 음식과 문화에 대한 관심은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동양에 대한 인식이 확대된 데서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또는 고전적 프랑스 요리 훈련을 받은 후 그들의 문화유산으로 눈을 돌리는 신세대 요리사들을 통해 아시아 음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에서 야시장을 조성하는 작업은 많은 경우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역 관리들에게 야시장이 지닌 잠재적 경쟁력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대다수의 시정부 관리들은 주말 밤에 열리는 ‘먹자 시장’에 손님이 들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천막집이나 손수레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음식을 먹으려 늦은 시간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야시장 상인들도 공중보건국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헬스 코드를 통과하려 기를 쓰지만 결과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좀처럼 넘기 힘든 문화적 장벽까지 버티고 있다. 비 아시아계 주민들에게 시장의 존재이유를 납득시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작업이다.
주민들은 동네에 야시장이 서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차량과 인파가 몰리면 교통정체와 주차문제 등으로 당장 주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
웨스트민스터의 시장을 역임한 케이시 버초즈는 “시 정부의 입장에서 처음에는 야시장의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파머스마켓이라면 모를까, 비교대상마저 없는 생소한 성격의 야시장이 솔직히 어떤 곳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는 고백이다.
버초즈는 “당시 우여곡절 끝에 야시장 오픈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몇 명의 고객이 찾아올지 내심 불안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시장은 오픈과 동시에 대히트를 기록했다.
개장한지 얼마 안돼 주말방문객 수가 하루 평균 3,000명을 돌파했다.
덕분에 정부도 상인들도 신바람이 났다.
웨스트민스터시 정부 관리들은 메이저 세수원의 등장에 환호했고, 아시안 가든 몰 야시장에서 오징어 구이집을 운영하는 맥스 응웬과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는 쭉쭉 뻗어가는 홈런성 매출고에 쾌재를 불렀다.
3년 전부터 오징어를 구워온 이들 2인조는 매 주말마다 하룻밤 평균 2,000 파운드의 오징어를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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