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향수의 귀환… 다시 쏟아지는 LP플레이어 제품
오디오테크니카의 턴테이블 AT-LP120-USB.
‘레코드판’(LP)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덩달아 인기를 끄는 기기가 바로 LP 재생기기인 턴테이블이다. 이에 컴팩트디스크(CD) 시대를 맞아 생산을 중단했던 오디오 업체들이 다시 턴테이블을 내놓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요즘 나오는 턴테이블의 상당수는 단순 LP 재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LP 음악을 디지털 음원파일로 변환해 CD나 USB 저장장치에 담을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런 턴테이블을 이용하면 아날로그 감성을 편리한 디지털로 옮길 수 있다. 이런 기능을 가진 턴테이블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이 바로 티악의 LP-R550USB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제품은 특이하게도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 카세트테이프 재생기 3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있다. 따라서 LP는 물론이고 추억의 카세트테이프까지 재생하면서 디지털 음원으로 변환해 CD와 USB에 저장할 수 있다.
티악의 턴테이블 LP-R550USB.
일본의 가전 명가인 소니도 8년 만에 턴테이블 ‘PS-HX500’을 내놓는다. 4월에 유럽에서 먼저 선보일 예정인 이 기기는 USB케이블로 컴퓨터와 연결하면 LP가 재생되는 동안 디지털 음원파일로 전환돼 컴퓨터에 저장된다. 이렇게 저장된 파일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옮겨 갖고 다니며 들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소니는 음악 편집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한다. 이를 컴퓨터에 설치하면 디지털 파일로 변환된 LP 음악을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다. 가격은 500유로(약 560달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소닉의 오디오 브랜드인 테크닉스도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 턴테이블인 ‘SL-1200’ 후속작을 공개했다. 1972년 출시돼 전세계적으로 300만대가 넘게 팔린 SL-1200은 점점 수요가 줄어 2010년 생산 중단됐다. 6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테크닉스 50주년 한정판‘그랜드 클래스 SL-1200GAE’와 일반제품 ‘SL-1200G’는 고성능 모터와 고음질을 강조한다. 올 여름과 연말 출시 예정인 이 제품의 가격은 4,000달러로 알려졌다.
턴테이블을 살 때 고려해야 할 점이 전용앰프(포노앰프)다. 보통 턴테이블은 미세한 바늘 끝에서 재생되는 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포노앰프에 연결한 뒤 이를 스피커와 연결된 일반 앰프에 재차 연결해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같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요즘 나오는 일부 턴테이블은 아예 포노앰프를 내장했다.
소니의 턴테이블 PS-HX500.
일본의 음향기기 전문 브랜드 오디오테크니카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AT-LP120-USB 및 AT-LP60-USB은 아예 포노앰프와 스피커가 내장돼 있어서 따로 앰프에 연결하지 않아도 바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제품 역시 LP 소리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턴테이블을 살 때 본래 기능에 충실한 제품을 고르라고 권한다. 업계 전문가는 “어느 턴테이블이나 바늘이 달린 장치인 카트리지가 음질을 좌우한다”며 “저가 제품 중에서도 카트리지 교체가 가능한 제품을 사면 차후 고급형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입문자들은 손으로 기기를 다루다가 바늘을 망가뜨릴 수 있으니 스위치로 바늘이 장착된 톤암을 움직이는 전자식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지개를 켜고 있는 한국 LP시장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가격이다. 국내 LP 가격은 평균 4만 원대로, 미국보다 1.5배 가량 비싸다. 영국의 세계적인 팝스타 아델이 지난해 발매한 ‘25’ 수입반 LP의 국내 유통가는 3만2,000원. 반면 조용필이 2013년 발표한 ‘헬로우’ LP는 4만7,500원, 김동률이 지난해 낸 ‘동행’ LP는 4만4,000원이다. 해외에서 수입해 온 LP와 비교해 국내 가수 LP의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낮은 것이다. CD 음반 시장에선 물 건너 온 수입반이 당연히 국내에서 제작된 CD보다 비싼 것과도 대조된다.
문제는 열악한 국내 LP 제작 여건에 있다. 김영혁 서울레코드페어 본부장(김밥레코즈 사장 등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엔 LP를 제작하는 공장이 한 곳도 없다. 2011년에 LP를 찍는 공장이 하나 생겼다가 경영 악화 및 기술 문제로 문을 닫았다. 결국 국내 가수들이 LP를 제작하려면 일본, 영국, 독일, 체코 등 해외 업체에 의뢰해야 한다.
전량 해외 제작은 발매 지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봉수 비트볼뮤직 대표는 “세계적으로 LP 생산량이 늘어 현지 공장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주문이 밀려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부분의 가수들이 CD 발매 후 뒤늦게 LP를 내놓는 이유다.
더 큰 숙제는 LP 제작 전문가의 부재다. LP의 홈을 파는(커팅) 경험 많은 엔지니어들이 거의 다 은퇴를 한 상황. 2000년대 국내에 LP 공장이 있었을 때도 커팅 엔지니어가 없어 국내에서 100% LP 제작이 어려웠는데, 앞으로는 아예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컴퓨터 등으로 찍어낼 수 있는 디지털 매체 CD와 달리 사람의 손길이 하나하나 닿아야 하는 아날로그 매체 LP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더구나 최근 국내 LP 팬이 크게 늘었다지만 미국 등 해외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 LP 가격이 조만간 떨어지기를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한 대형 가요기획사의 이사는 “우리나라는 아직 LP를 대량생산할 정도로 수요가 많지 않다”면서 “CD보다 4~5배 비싼 LP 가격이 떨어져야 10~20대들이 움직여 소비층이 넓어질 텐데 난제들이 많아 가수의 팬덤을 이용한 한정판 고가 전략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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