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한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전자 연하장을 받았다. 컴퓨터 모니터에 의례적인 덕담들이 지나가더니 마지막 화면에 변호사 사무실을소개하는 문구가 떴다. “Where diversitymeets success” , 다양성과 성공이 만나는 곳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무실은 한인 변호사와 미국인 변호사가 공동 운영하는 곳이다. 과연 문구처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적어도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서는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들어 다양성은 한 사회나 조직이 살아남고 번영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다양성은 기회의 균등이나 정의라는 도덕적 차원에서 추구하고 장려돼 온 감이 있지만 이제는 현실적필요성과 그것이 지닌 가치 때문에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객관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최근 소수민족 학생들을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이 또 한 번 뜨거운논쟁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텍사스대학 쉰 레빈 교수와 컬럼비아 대학데이빗 스타크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피험자들을 인종적으로 다양한 그룹, 그리고 동질적인 그룹으로 나눈 후 가상 주식거래를 통해 주식의 실제 가치를 평가해 보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룹 내에서다른 이들의 거래 상황을 들여다 볼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그룹이 내놓은 대답들이 동질그룹의대답들보다 무려 58%나 더 정확한것으로 나타났다. 인종적으로 다양한 그룹에서는 인지적 마찰이 생기면 곧바로 오류를 살피고 이를 수정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반면 동질적그룹에서는 쉽게 다른 이들에 동화되고, 그런 동화는 대부분 잘못된 방향으로 이뤄졌다. 단지 다른 인종의존재만으로도 전체의 판단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대입사정에서 인종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결과적으로 모든 학생들의 학업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다양성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미시간 대학 스캇 페이지 교수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가 평생 일관되게 펼쳐오고 있는 주장은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는 것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제나라 맹상군은 다양한 도구의 가치를 일찍이깨달았던 인물이다. 그는 수천의 식객을 먹이고 재우며 귀천 없이 대했다. 그는 진나라에 갔다가 잡혀 옥에갇히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같이 데리고 간 식객들 가운데 하나인 개도둑이 훔쳐 준 흰여우 가죽옷을 뇌물로 바쳐 풀려난 후 닭울음소리를 기막히게 내는 식객이 새벽 성문을 열게 해 무사히 도주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온 게 ‘계명구도’ (鷄鳴狗盜)라는 고사성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명문하버드 대학의 현 총장은 여성인 드루 길핀 파우스트다. 파우스트 총장은 하버드 출신이 아니다. 학부는 이름도 생소한 브린모어라는 단과대를나왔고 석·박사도 펜실베이니아에서 했다. 하버드를 최고로 만들어 주는 힘은 이처럼 순혈주의를 거부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깨어있는 정신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노정해 온 퇴행과불통의 중심에는 바로 다양성의 결여가 자리 잡고 있다. 박 대통령은유독 율사들과 군인들을 좋아한다.
각자의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이런구성으로는 국가적 난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핵심 엘리트들이 쿠바 피그만 침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던 것은 그들의 머리가 나빴기 때문이 아니다.
비슷하게 세상을 보는 인물들이 모여‘ 집단사고’를 한 결과였다. 대북조치에 대한 비판을 국론분열로 몰아가는 인식에서도 집단사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가뜩이나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비슷한 부류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기발한 발상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삶은 콩에서 싹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끼리끼리’는 ‘동조화’라는부작용을 낳고 동조화는 퇴행을 초래하게 돼 있다.
박근혜 정부가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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