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핵심 목표로 내세웠던 창조경제의 현 주소는 어딜까. 대통령의 관심과 독려, 그리고 반복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애매모호한 창조경제의 개념 때문에 초창기 많은 혼란이 있었고 심지어 주무부처 장관조차 창조경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창조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경제의 동력을 만들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자는 걸 창조경제의 핵심 개념이라고 본다면 지난 3년 간 실적에 후한 점수를 주긴 힘들다. 작금의 경제현실과 지표들이 이런 평가를 뒷받침해 준다. 전문가 21명이 준 창조경제 3년 성적표를 보니 B가 14명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은 C로 5명, 그리고 A는 단 2명이었다.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는 창조경제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다. 창조경제의 바탕이 돼야 할 창의성이 싹트고 자라기 힘든 토양 때문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보통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여유로울 때 잠재의식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절박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생각의 흐름이 꽉 막혀 버린다. 한 번의 실패가 곧 낙오를 의미하는 살벌한 생존경쟁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만개하기 힘들다. 절박함이 이뤄내는 성취도 분명 있겠지만 창의적인 결과물은 아주 드물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씩 ‘생각주간’(Think Week)이라는 휴가를 떠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기간 동안 게이츠는 인적이 드문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고서들을 읽고 구상을 한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키운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이 때 나왔다. 게이츠는 “생각주간이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다”며 전사적으로 이를 도입하기도 했다.
게이츠는 휴식과 여유를 게으름과 낭비로 보지 않았다. 창의력이 어디서 솟아나는지 그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의 대표적 기업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배경에는 창의성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게이츠의 혜안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부력의 원리를 찾아낸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며 알몸으로 뛰쳐나온 것도 목욕통 아니었던가.
최근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수입을 지급해주는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북유럽의 IT 강국 핀란드는 모든 국민에게 월 100여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하고 구체적 방안을 마련 중이다.
네덜란드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으며 스위스는 올해 이를 국민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기본소득제도는 ‘사회안전망’이 돼 온 기존의 복지를 한층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복지 알레르기에 걸린 사람들로서는 거품을 물만한 조치들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본소득 보장은 그저 마구 퍼주자는 게 아니다. 기본소득 지급이 수혜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개선해 주고, 돈의 원활한 흐름을 조성해 경제체질까지 강화시켜 준다는 것은 실증적 조사들을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경제를 더욱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고,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된다는 심리적 안정감은 젊은이들의 도전과 창의적 아이디어의 바탕이 된다. 영화와 뮤지컬, 게임 등으로 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해리 포터’의 탄생을 가능케 한 것은 작가 조앤 롤링에게 영국정부가 지급해 준 일주일 70파운드씩의 생활보조금이었다.
가난한 이혼녀에 아이까지 딸렸던 롤링에게 이 생활 보조금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책을 쓰는 대신 아이 우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저임금 노동에 매달려야 했을 것이다. 대표적 복지국가 스웨덴이 새로운 IT창업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창조경제는 죽어라 하며 뛰는 절박감과 ‘하면 된다’는 악착같은 정신력으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환경적, 경제적 안정과 여유가 뒷받침 될 때 가능해 진다. 그럼에도 이런 것들은 낭비로 여기면서 창조경제를 외친다면 그건 그저 허망한 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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