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헛물을 켰다.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만 먼저 마신 꼴이다. 제20대 총선 여야 비례대표 후보자 발표를 보고 든 생각이다.
새누리당이 22일 발표한 40명의 후보자 가운데 재외동포는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앞서 더 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서도 재외동포는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 정치에서 ‘700만 재외동포’의 존재가 실종된 것이다.
이유야 있을 것이다. 낮은 재외 유권자 등록률은 좋은 명분이다. 200만 명이라는 전 세계 유권자 중에서 불과 15만 명 남짓 등록했을 뿐이다. 누가 봐도 총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미미한 숫자다.
정치는 머릿수의 게임이다. 보팅 파워가 없는 재외 유권자들에게 후보자는 물론 정당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한국 정치권에 비례대표를 신청한 재외동포들의 자질이나 적합성 여부도 문제가 될 것이다. 여야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은 공천 신청자들이 재외동포들의 권익을 대변할만한 전문성이나 자격을 갖췄다고 수긍할 재외동포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칫 공천을 줬다 동포사회의 집안싸움만 일으킬 수 있다는데 누가 화를 자초하겠는가.
그럼에도 재외동포사회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700만 재외동포들을 푸대접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러나 정치적 홀대를 서운해 하기에 앞서 재외동포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재외동포들을 바라보는 한국 정치권의 속마음이다.
“재외동포는 대한민국의 큰 자산.” 워싱턴이나 해외를 방문하는 많은 정치인들의 달콤한 레토릭이다. 우리는 그 말의 진심을 믿었다. 자긍심과 일체감도 덩달아 가졌다. 때로는 워싱턴을 찾는 국회의원들과 식사도 하고 골프도 치면서 은근한 ‘자부심’도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여의도에 와보니 여기 사람들이 재외동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 재외동포는 필요할 때 잠시 이용하는 소모품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것보다는 아예 무관심하다는 게 정확할 겁니다. 재외동포들만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절치부심 끝에 한국 정치권의 ‘변두리’에 간신히 진출한 한 재외동포 출신의 솔직한 고백이다.
여야 비례대표에 재외동포가 단 한명도 없는 현실을 이보다 더 정확히 설명해주는 건 없다. 사탕발림에 현혹돼서, 유력 정치인과 자신의 ‘친분’을 오인해서, 자신들이 그리고 재외동포들이 3순위인 줄도 모르고 0순위로 착각한 결과다.
재외동포에 대한 근본적인 무관심. 한국 정치권의 이 타성을 깨려면, 못된 버릇을 고치려면 길은 하나밖에 없다.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 힘은 두 갈래에서 나온다. 하나는 미 주류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그네들이 스스로 필요해서 찾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외선거 등록률과 투표율을 높여 한국 유권자 파워를 스스로 갖는 것이다.
필요성과 두려움, 그 힘이야말로 한국 정치인들의 속마음을 바꿀 유일한 길이다. 4년 뒤 다시 헛물을 들이켜지 않으려면 이번에 뼈저리게 자성해야 한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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