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학력에 취업 못하는 백수 주변부 밀려난 ‘분노한 계층’ 트럼프의 필승카드로 부상
▶ 오하이오주 사이오터 카운티 실업률·빈곤율 치솟아 황폐 “예전과 달리 암울” 불만 팽배
이 사람들에겐 대학졸업장이 없다. 취업전망도 시계제로의 암흑이다.
피부색은 분명 ‘주류’인데 사는 모양새를 보면 영락없이 미국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낙오자’그룹이다.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백인 남성 가운데 25%가 이 그룹의 소속원이다. 25세에서 64세 사이의 연령층에 속한 낙오자들의 절반가량은 ‘완전 백수’다. 그저 일자리만 없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찾아보려는 의욕마저 이미 오래 전에 상실했다.
이처럼 어려운 형편에 처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선거판의 ‘태풍의 눈’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분노를 매개삼아 정치적 결속을 이룬 전국의 낙오자 그룹이 2016년 대선 캠페인의 진행방향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잠재적 몰표를 의식한 대선 예비주자들은 재빨리 제조업, 무역 등 경제적 이슈로 공약의 중심추를 이동시켰다.
특히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분노의 정치학’을 필승카드로 십분 활용하면서 본선 티켓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미국이 잊어버린 저학력자들을 사랑한다”고 선언한 그는 고졸 이하 백인 남성들이 주축을 이룬 낙오자 그룹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박대를 당하고 경제적으로도 외면을 당한 낙오자 그룹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역으로는 오하이오 주의 사이오터 카운티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오하이오 주 남부에 있는 이곳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켄터키 주와 마주보고 있다.
16세에서 64세 사이의 연령대에 속한 이곳의 남성 중 일을 하는 노동인구의 비율은 53.8%에 불과하다.
사이오터 카운티에서는 생계를 꾸려가기 어렵다. 수천 명의 종업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던 신발공장들은 단 한 개만 남고 모두 문을 닫았다. 중산층 가정의 버팀목이었던 제철소도 거의 모두 사라졌다.
선로보수창 옆 석탄 야적장의 규모 역시 축소됐다. 한때 이곳에는 켄터키에서 실어온 석탄의 거대한 봉우리들이 서 있었다.
일터에서 밀려났지만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실업자들의 비율은 2월 현재 9.2%로 높은 수준이다. 사이오터 카운티 주민의 빈곤율은 27.2%로 주 전체 수치인 15.8%를 웃돈다.
레이오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AK스틸은 최근 600명의 직원을 내쳤고 CSX와 노폭 서던 철도사는 지난해부터 감원의 도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
헤이버힐 케미컬은 소유주가 바뀌면서 작년 8월 이후 150명을 잘라냈다.
사이오터 카운티는 빈촌이다.
총 7만7,999명의 주민들 가운데 대학졸업자의 비율은 14.4%로 주 전체의 25.6%, 전국 수치인 29.3%를 밑돈다.
최근 열린 오하이오 주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주민들은 주지사인 존 케이식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사이오터 카운티에서는 트럼프가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사이오터 주민들은 굳이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생계비수준의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액션의 사무총장 스티브 스터질은 “30~40년 전에는 남편 혼자 신발공장에서 일해 처와 두어 명의 자녀를 너끈히 부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공장 노동자로 잔뼈가 굵은 폴 브라운(28)은 검정고시(GED) 출신으로 흔히들 말하는 ‘고등학교 졸업에 준하는 학력’의 소유자다.
조경상품 제조업자로 잠시 활동했던 그는 플래스틱 공장, 자동차부품 공급사, 트럭조립공장 등지를 전전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브라운이 받은 최고 시급은 13.84달러에 불과하다.
전망이 꽉 막힌 직장에서 탈피하고 싶지만 어디를 가건 고용주는 그가 가진 재능을 펼쳐 보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브라운은 “대학졸업장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으면 남부 오하이오에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커리어 기회를 잡기 위해 전기공 훈련을 받고 있는 그는 “자격증을 딴다 해도 전망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오터 카운티에서 4인 가족이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려면 최소한 시간당 25달러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 커뮤니티 액션의 스터질은 “여기서 그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이려면 한 사람의 힘만으론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암울한 경제적 현실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나이 들어 퇴출당한 근로자들은 재기의 희망을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실직자들의 취업훈련을 지원하는 연방기금마저 동이 난 상태다.
그나마 돈이 될 만한 기술을 지닌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90~100마일 떨어진 콜럼버스와 신시내티로 이주했다.
뒤에 처진 낙오자들 중 상당수는 마약에 쩔어 지낸다. 남아 있는 주민들 가운데 장애자의 비율은 5%로 주 전체의 3.1%에 비해 높다.
이곳의 많은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세컨드 잡을 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일자리마저 잡지 못한 채 아예 구직 노력을 포기한 주민들이 부지기수다.
블루칼라 노동자인 마이클 케빈(44)도 스스로를 낙오자라 생각한다. 켄터키 주 깡촌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도 아버지처럼 광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90년 광산회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폐업했다.
광부의 꿈을 접은 케빈은 오하이오 접경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M&J 인더스트리와 밀스 프라이드 등의 제조회사에서 공원으로 일하며 아내와 두 자녀를 부양했다. 그에겐 전처소생의 자녀도 셋이나 있다.
케빈에게 12.75달러의 시급을 지급하던 밀스 프라이드는 5년 전 1,400명의 직원을 허허벌판으로 내몬 채 문을 닫았다.
병충해방제업체로 옮겨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던 케빈은 2014년 백혈병 확진판정을 받았다. 당시 아내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푸드스탬프와 메디케이드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는 케빈은 외국으로 이전한 제조공장과 일자리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제조산업이 되살아나야 미국경제가 활기를 찾을 것이며 자신과 같은 낙오자들에게 새로운 취업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그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브라운, 케빈과 같은 경제적 낙오자들의 분노가 트럼프에게 거대한 정치적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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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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