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스 컬렉션 The Phillips Collection

Pierre-Auguste Renoir,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Oil on canvas, 51 1/4x 69 1/8 in.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Acquired 1923
르느와르의 ‘선상 오찬파티’ 볼까...아펠 특별전 볼까
워싱턴 DC의 구역 중에서도 뒤퐁 서클은 가장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거리 중의 하나이다.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아서도 그렇고, 대사관과 문화원이 제공하는 각종 문화행사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또한 갤러리나 다양한 문화 공간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필립스 컬렉션’이다.
워싱턴 최고의 사립 미술관
이 미술관은, 미국 최초의 현대 미술관이라는 의의도 있지만, 컬렉션의 중요도에서 보면 워싱턴에서 가장 중요한 사립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DC 안에서의 유일한 경쟁 상대였던 코코란 갤러리가 최근에 내셔날 갤러리로 넘어가면서 명실공히 디시 최고의 사립 미술관 자리를 견고히 하였다.
필립스 컬렉션은 미국의 철강과 은행 재벌인 던컨 필립스 집안의 개인 소장 컬렉션을 기초로 성장한 미술관이다. 던컨은 아버지와 형이 죽고 난 슬픔을 달래기 위해 집안의 소장품으로 ‘추모 미술관’을 지음으로 예술을 통한 삶에의 애착을 되찾았다고 회고할 만큼, 예술은 그에게 전부였다.
이 미술관은 원래 필립스 집안의 저택을 좀 더 확장 개조한 것이므로 상당히 자그마하고 오밀 조밀한 죠지안 리바이벌 양식의 타운홈 스타일이다. 그래서 상설 전시는 주기적으로 소장품을 바꿔서 전시하는데 이러한 연고로 매번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또한 때로는 다른 시대와 지역의 작품을 병행해서 전시하여, 신선한 느낌으로 관객이 예술을 만나는 것이 필립스의 의도였다.
커피샵, 도서관, 정원도 갖춰
1897년 던컨 필립스가 그의 집안에 갤러리를 만들어 소장 전시를 하다가 1930년에는 가족이 모두 이사를 나올 때까지 필립스는 계속 갤러리와 오피스를 증축해 나갔다. 1960년에 필립스에 현대적인 부속건물이 덧붙여졌는데, 1989년에 일본 사업가 야수히로 고가 기부를 하여서 ‘Goh Annex’라고 불린다.
2006년에는 주변의 아파트 빌딩을 사들여서 미술관과 연결시켰고, 이로 인해서, 갤러리 공간은 물론이요, 오디토리움, 도서관, 정원, 예술품 보관소, 뮤지엄 샵, 커피샵 등이 생겨났다. 그리고 미술관 뒤에는 메릴랜드 대학과 연계하여 현대미술을 연구하는 학술센터가 최근에 문을 열어서 강의와 세미나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필립스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는 약 4,000점의 작품들은 미술사 교과서에 나옴직한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미국 최초의 현대 미술관으로서 의의
주지하듯이, 현대미술이 대략 프랑스의 사실주의, 인상파, 후기 인상파에서 시작되어 두 세계 대전 중 피난 온 유럽 작가들에 의해 미국을 무대로 전개되었다면, 필립스에는 그 시대적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도미에, 르느와르, 반 고흐, 세잔, 드가, 브라크, 피카소, 호머, 마티스, 폴 클레, 죠지아 오키프, 드 쿠닝, 스티글리츠, 마크 로드코, 제콥 로렌스 등이 이곳에 소장된 대표적 작가들이다. 필립스는 현대 미술도 계속 사들이는데, 필립스가 최근 소장하게 된 한국 미술은 니키 리의 사진과 변시재의 그림이다. 이곳은 고전적 근대 미술과 가장 진보된 현대 미술이 만나는 접점이다.
르느와르의 명작도
필립스 콜렉션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르느와르의 ‘선상 오찬 파티’일 것이다. 메종 프르네즈라는 레스토랑에 르느와르의 친구들이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다양한 중산 계층의 직업을 가진 파리지엔들이 모여서 와인과 음식,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인 이 작품은, 붓 터치가 즉흥적이고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색채의 인상파 작품이면서, 동시에 19세기말 변화하고 있는 프랑스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도시화 산업화로 증가한 중산층, 그리고 그들을 위해 생겨난 새로운 놀이와 레저 문화를 알려주고 있고 선상파티는 그 중 하나이다.
인상파를 이 같은 사회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반드시 언급하는 작품이 바로 이 ‘선상 오찬 파티’이다. 이 그림에서는 부르주아와 프티 부르주아와, 즉 상류귀족 계급과 신흥 중류층의 다양한 직업 분포를 보여주고, 그들이 서로 친밀하게 교제함도 보여주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로 새로 부상했던 후자들은 귀족은 아니나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계급으로서 19세기 말 파리 문화의 주역이었다. 인상파가 밑그림 없이 빠른 속도로 그리는 것 외에도 바로 자신들의 바뀌어가는 환경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모던아트의 소재로서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명상이 있는 방
또 한 가지 주목할 곳은 ‘로드코 룸’이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 2세대인 마크 로트코의 네 개의 색면 추상이 걸려있는 이 작은 방의 입구에는 8명만 한꺼번에 이 방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방이 작아서라기보다는 여유있게 명상할 수 있는 구분된 공간으로 하기 위함이다. 그의 작품을 배치하고 작가가 와서 중간에 벤치를 하나 놓으면 좋겠다고 하여 그의 의견대로 의자가 놓여있다.
관람객이 의자에 앉아서 볼만큼 복잡한 내용의 그림이 아니고 두서너 개의 큰 색면으로만 이루어진 그의 추상작품은, 그의 색을 바라볼 때 종교심에 가까운 영적 승화가 일어난다는 작가의 믿음에서 제작된 것이다.
모노크롬 즉 단색화를 통해 종교적 명상을 꿈꿔왔던 전통은, 20세기초 최초의 추상작가중 하나인 러시아의 말레비치의 흰 단색화, 20세기 중반의 프랑스의 이브 클렝의 푸른색 단색화, 그리고 50년대 미국의 로드코에 이어 70년대 이우환 작가 등이 주도한 한국과 일본의 단색화 전통으로 이어진다. 이 방에 잠시 앉아서 색을 바라보며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자.
9월까지 아펠 특별전
필립스 미술관은 설립 95주년 기념으로 중요한 특별전들을 기획하였다. 그 중 하나가 9월까지 이어지는 캐럴 아펠 전시이다. 아펠은 20세기 네덜란드 작가중, 몬드리안과 윌렘드 쿠닝과 더불어 3대 가장 중요한 작가라 할 수 있다. 그가 만든 코브라(COBRA-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약자) 그룹은 파리가 무대이긴 하였으나 북구 유럽 작가들이 주축이 된 20세기 초반의 마지막 아방가르드 그룹이다.
이들은 2차 대전 이후 절망한 인류의 몸부림을 화폭에 담았는데, 아펠은 공격적이고 실험적인 자세로 원색적인 색채와 추상화된 형태묘사로 창작하였다. 코브라라는 그룹이 낯설다면, 카렐 아펠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생경한 미술을 만나길 권유한다. 미술이 인간의 잔혹한 본능을 표현하는 것인지, 그것조차 지적인 탐구의 결과물인지 토론의 대상이 되는 작가이다.
또다른 피서지
또다른 기획전은 미국 작가 윌리암 메릿 체이스 전시이다. 미국 모던아트를 이끌 에드워드 하퍼나 죠지아 오키프, 죠셉 스텔라 등을 키워낸 스승이기도 한 그는 19세기말 20세기 초 미국의 중요한 인상파 작가라 할 수 있다.
그가 만든 체이스 스쿨은 뉴욕 파슨스 스쿨의 전신이다. 유럽의 인상파 작가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묘사했듯이 그는 충실하게 미국의 근대화되어가는 이곳저곳 그리고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 아직도 피서를 못 갔다면 그의 “해변에서”라는 작품을 만나보라. 빛에 녹아 들어갈 것 같은 해변의 여유로움과 캐주얼한 스케치로 인하여 긴장이 모두 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필립스 컬렉션은 예기치 못한 또 다른 피서지가 될 것이다.
주소 1600 21st Steet NW,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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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미술사학자, WUV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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