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타닉 조선소는 아일랜드가 숨긴 보물이다

타이타닉 뮤지엄의 전경.
제주도처럼 돌이 많아 아일랜드는 한국의 제주도처럼 돌이 많다. 아일랜드 농부들은 돌을 깨서 담을 쌓고 바다에서 해초를 뜯어와 거름을 만들고 감자를 심었다고 한다. 오래 전 감자 전염병이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기에 식량이 부족하여 1백만 명이 사망하고 1백만 명이 고향을 떠나 외국으로 갔다고 한다. 더블린 시내 강가에 뼈만 남은 대기근 동상이 있다. 어려운 때를 잊지 말고 열심히 살자는 뜻이리라.

18-19 세기 민속촌
점심때가 되어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의 언덕위의 음식점에서 생선 튀김, 쇠고기와 닭고기 요리를 먹었다. 점심 식사 후 시내 관광을 하며 선물가게를 둘러보기도 하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도 보았다. 근처에 있는 조그만 선물가게들을 둘러보다가 양털 제품이 싸고 질이 좋기에 양털조끼를 하나씩 구입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민속촌에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지붕은 우리나라 초가집 같으며 돌담을 쌓아서 집을 지어 놓았고 방안에는 낡은 침대가 있고 마당에는 농기구가 널려 있는 낯익은 풍경이었다. 마당에는 닭이 모이를 쪼며 먹는 한가한 풍경이었다.
목동들이 양떼를 치던 동네도 관광하였다. 한국의 돌산 같은 가파른 언덕에 흩어져 있는 양들을 목동이 휘슬을 불면 개 3마리가 양들을 몰고 다녔다. 아침에 산으로 갈 때와 저녁에 돌아 올 때 목동이 휘슬을 불면 개들이 양떼들을 산위로 몰아가기도 하고 집으로 몰고 내려오기도 하는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개 훈련을 잘 시켜야 목동들이 편하다고 한다.
8백년 거주한 성채 넷째 날 말라하이드 캐슬과 해안 관광(Malahide Castle & Costal Tour): 킬케니 캐슬이나 모허의 절벽을 보러갈까 하다가 가까운 곳에 있는 말라하이드 성으로 가기로 했다. 어제 밤 늦게 돌아 왔기에 지친 여독을 풀 겸 한가하게 발길 가는 데로 시내를 다시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말라하이드 성은 더블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오랜 된 성으로서 탈봇트 가(Talbot family)에서 8백 년 동안 거주했던 큰 건물이 있는 성이다. 관광버스에는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찰리 채플린 별장 근처의 아름다운 해안 동네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거리를 달리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섬 위의 고목 위를 날라 다니는 갈매기 떼가 고향을 생각나게 했다. 2백 50에이커의 넓은 대지 위에 농장도 있고 운동장도 있어 주말이면 운동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도중에 호스(Howth) 라는 어촌 마을에 버스를 세우고 관광을 하였다. 마을은 조용하였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순수하였다. 일찍 더블린으로 돌아왔기에 시내를 산책하며 발길 가는 데로 관광하기로 했다.
리피 강의 다리 중에서 오코넬 브릿지와 하페니 브릿지가 유명하다. 오코넬 브릿지는 유명한 대니얼 오코넬의 이름을 딴 것이며 오코넬 거리와 맞닿아 있고 더블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과 차량이 다니는 곳이다. 오코넬 브릿지에서 약 3백미터 떨어진 곳의 하페니 다리는 보행자 전용다리. 대니얼 오코넬은 아일랜드 해방자로 알려진 가톨릭교도 법조인이다. 1823년부터 가톨릭교도에 대한 정치적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한 사람이다. 이후 십일조 전쟁 후에 1801년 연합법 무효화 활동을 한 독립 운동가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웅으로 꼽고 있는 사람이라 중요한 곳에는 그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시내 어딘가에 제임스 조이스 센터가 있다는데 찾아가지 못하고 거리에 세워진 그의 동상이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길가에는 동상이 여럿 있었는데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은 오코넬 거리 옆 골목에 앉아 있는 동상이라 잘 보이지 않아 쉽게 찾지 못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동상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9백년대의 제임스 조이스가 오늘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더블린서 여행상품 고르면 훨씬 저렴 더블린에서 관광 여행 상품을 고르는 것이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호텔이나 버스 정류장 근처 조그만 가게에서도 마음에 드는 관광 코스를 예약하면 해외에서 예약하는 요금의 반도 되지 않는다. 물론 관광 상품도 훨씬 더 다양하다. 호텔에서 다음 날 갈 관광코스를 북아일랜드 벨페스트에 있는 타이타닉 뮤지엄으로 정하고 티켓을 구입했다. 남쪽의 웩스포드라는 항구를 가 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곳은 인구 2만명의 작은 도시지만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가 있으며 미국과 유럽 오페라 애호가들이 모이는 곳이라 가 보고 싶지만 욕심을 내려 좋고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기로 했다.
더블린 시내 한 식당 ‘김치’ 레스토랑을 찾아서 들어갔더니 한국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으며 정겨운 사람들도 만났다. 옆자리 한 그룹의 여행객들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에서는 세계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이며 미, 영, 불, 이태리 유명한 나라는 다 다녀 본 사람들이고 아일랜드를 오는 팀은 여행에 관록이 붙은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 같았다. 아일랜드만 일주일 관광하며 서로 친목을 다지는 여행을 한다고 했다.
템플 바(Temple Bar) 거리는 밤이 되면 색소폰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춤추는 거지와 행인들, 여행 가방을 끌고 춤추는 여행객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라이브 바 술집에는 문 밖까지 사람들이 넘쳐나고 흥겨운 음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신바람 나게 춤 추게 하는 활기찬 밤거리 풍경이었다.
슬픈 역사를 기록하다 타이타닉 뮤지엄(Titanic Museum & Belfest City trip): 타이타닉 조선소는 아일랜드가 숨긴 보물이다. 사고 후 100년이 지난 2012년 뮤지엄을 건설하여 뒤늦게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조그만 도시에서 차를 세우고 잠시 휴식시간을 주었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타이타닉 뮤지엄 앞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우리들을 처음 맞이한 곳은 설계실이었다. 큰 사무실에 많은 사람들이 설계도를 놓고 타이타닉 호를 설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왜 무엇이 문제였는지 문제점을 찾는 것 같았다. 뮤지엄에서 타이타닉호의 시작과 끝을 다 볼 수 있었다. 슬픈 역사이지만 기념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할일로 알고 꼭꼭 숨겨 놓고 있던 비밀을 다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타이타닉 영화는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하였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실화와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최고의 영화를 만들었다. 두 주연 배우의 뱃머리 씬, 마지막 배가 침몰할 때 끝까지 연주를 했던 바이올리니스트들, 두 손을 꼭 잡은 채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부부등 명장면들을 생각해 보며 뮤지엄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생명은 아랑곳 하지 않고 승객들을 위하여 끝까지 바이올린 연주를 한 연주자들은 실제 생존 인물들이라고 한다.

옛날 타이타닉 조선소의 모습
세월호와 타이타닉의 승객들 선박의 내부, 항해시 배 안의 생활, 빙산에 부딪힌 후의 장면들, 생존자들 이야기를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실제 조선 건설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그대로 들리게 되어있었다. 벽 한편에 전면 스크린이 있고 영상은 타이타닉호 엔진실에서 부터 선상의 다이닝 룸, 연회 장소 1,2,3 등 선실 등 전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치 실제 배안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유리바닥을 내려다보면 바다 밑바닥의 실제 타이타닉호의 녹슨 잔해가 보였다.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0일 출항하여 4일후 밤 11시 40분 빙산과 충돌하여 두 시간 40분만에 차디찬 바다 속으로 갈아 앉았다. 선원과 승객 2천2백명중 천 5백여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자 중에는 스미스 선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구명보트를 탄 사람들과 나무 조각을 붙잡고 아침까지 생존했던 사람들은 카로파티아 호에 의하여 구조되었다고 한다. 남자 생존자는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여자와 어린이들에게 구명정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세월호 사건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꿈의 배, 가라앉지 않는 배라고 자부심이 대단했었지만 비극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뮤지엄은 3년 이상의 공사 기간을 거쳐 원래의 타이타닉 호 건조 장소와 가까운 부둣가에 위치해 있다. 그 당시의 벨파스트 조선소는 뮤지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 당시 모습으로 서 있다. 이곳 출신 프로 골퍼 매킬로이의 할아버지도 이 조선소에서 일했다고 한다.
매킬로이와 골프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일부이다. 사람들은 아일랜드인이기도 하고 영국인이라고도 한다. 남북 통일을 주장하며 무력투쟁을 벌인 IRA 아일랜드 공화국 군, 북아일랜드 신교도들은 민병대를 조직해 싸운 과거가 있지만 평화 조약을 맺은 후 테러는 사라졌다.
북아일랜드 출신 골퍼들이 세계 메이저 대회를 휩쓸었고 인구 170만 명에 골프장 수는 1백개가 넘는다. 매킬로이 같은 유명 골프 선수가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관광을 마치고 버스로 더블린에 돌아오니 시간이 꽤 늦었다. 저녁을 먹고 템플바 지역을 돌아다니며 더블린의 마지막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오코넬 거리, 오코넬 브릿지, 제임스 조이스 동상, 한식당에서 만난 사람들과 타이태닉 뮤지엄이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이 나라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타이태닉호 뮤지엄을 보러 오는 사람들, 살기 좋은 나라라고 찾아오는 사람들, 골프를 치러 오는 사람들, 아름다운 해안을 드라이브 하고 싶어 오는 사람들, 물가가 싸서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 나들이를 하기 원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비고 있다. 나라가 잘 되려면 척박한 땅이라도 정직하고 훌륭한 지도자와 근면 검소한 국민들이 있으면 되는 것 같았다. 기름진 땅을 가진 나라들이 부정직한 리더를 잘 못 만나서 못사는 나라가 많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귀한 것을 발견하고 돌아간다. 굿바이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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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웅(윤동주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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