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 교체’ 바람 크지만 가상 대결에선 여당이 유리
▶ 행정권력, 의회권력 중 ‘오버’하는 쪽 대선 불리할 듯

내년 대선을 앞두고 20대 정기국회 시작부터 여야의 대치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정진석(앞줄 왼쪽)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에 몰려가 정세균(앞줄 오른쪽) 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 <연합>
‘시계추일까, 패키지일까.’
5년 전인 2011년, 필자는 이 같은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중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 예측해보는 내용이었다.
‘시계추 현상’은 한 정당이 주요 선거에서 이기면 바로 다음 선거에서는 상대 정당이 역전승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절묘한 균형과 견제를 바라는 유권자의 표심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여세를 몰아 바로 다음 선거에서도 이기는 경우는 ‘패키지(package)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선 당초 고전할 것으로 예상됐던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전체 300석 중 152석)을 얻으면서 야당인 민주통합당(127석)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어 12월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48.0%)를 제치고 당선됐다. 2012년 새누리당의 연승은 ‘패키지 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한국에서는 1980~90년대에 시계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엔 시계추•패키지 현상이 혼재돼 있다. 2002년에는 시계추 현상이 나타났다. 6월 지방선거 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압승하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참패했다. 그러나 6개월 뒤 치러진 12월 대선에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누르고 극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면 올해 4월 총선과 내년 12월 대선의 승패 관계는 어떻게 될까. 올해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는데 그쳐 참패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차지해 승리했고, 안철수 전 대표가 창당한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으며 선전했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패키지 현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시계추 현상이 된다.
여소야대 체제인 20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가 시작하자마자 여야가 치열한 오기 싸움을 하는 이유는 각각 ‘시계추’와 ‘패키지’를 만들어내려는 대선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협치 실종과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은 정면 대치 정치는 내년 대선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미르 재단•K스포츠 재단 의혹 등을 폭로하면서 박근혜정부의 ‘권력형 게이트’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새누리당은 이에 맞서 ‘불공정한 국회 운영’이란 이유를 걸어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국정감사 불참과 이정현 대표의 단식 투쟁으로 맞섰다.
여당의 국감 거부에 대해서는 “국정 운영과 민생을 책임져야 할 집권당이 국감 등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또 야당의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 대해선 “취임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장관을 겨냥한 해임건의안 처리는 다수 야당의 힘 자랑”이란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이 같은 여야의 행태들을 고루 지켜보면서 표심을 다듬어갈 것으로 보인다.
추석 이후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시계추인지, 패키지인지 예단하기 어렵다.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9월23~24일 전국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내년 대선에서 ‘야권으로 정권이 교체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53.1%였다. 반면 ‘새누리당으로 정권이 재창출돼야 한다’는 답변은 30.6%에 그쳤고, 모름•무응답은 16.3%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대선주자 이름을 놓고 지지율을 조사하면 여권 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선두를 달린다. 여야 대선주자 다자 대결에서 반기문 총장은 27.4%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16.5%)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8.2%)가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그 다음은 박원순 서울시장(4.4%) 오세훈 전 서울시장(4.3%)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2.8%) 순이었다.
새누리당 후보로 반 총장, 더민주 후보로 문 전 대표, 국민의당 후보로 안 전 대표 등이 출마하는 3자 대결에선 반 총장(38.5%) 문 전 대표(28.1%) 안 전 대표(14.5%) 순이었다. 다만 새누리당 후보로 반 총장 대신 김무성 전 대표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의원이 나서는 3자 대결에선 문 전 대표가 모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유권자들의 정권교체 바람이 크다는 점은 패키지 현상을 예고한다.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야당이 내년 대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반기문 총장이 여권 후보로 나서는 가상 대결에서는 반 총장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반 총장이 실제 출마해서 대권 고지에 오를 경우에는 시계추 현상이 된다.
내년 대선까지는 여야의 후보 경선, 대결 구도 등 유동적인 변수가 적지 않아 섣불리 한쪽의 승리를 점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중 권력’ 체제에서 힘을 과시하면서 ‘오버’하는 쪽이 내년 대선에서 불리하게 된다는 점이다. 행정 권력을 지닌 여당, 의회 권력을 차지한 야당 중 어느 쪽이 힘 조절을 제대로 할까? 대선 승부의 열쇠는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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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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