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전 서울시장
▶ 더치페이 문화 자리잡을 수 있어, 신뢰사회로 변화 크게 앞당길 것

서울 종로구가 지역구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대학로에서 시대정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서울 명륜동 공(共)ㆍ생(生) 연구소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대담에서 자신을 벽돌공에 비유했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역사에 크든 작든 벽돌을 하나씩 놓는 게 자신의 소임이라는 것이었다.
최근 마련한 연구소는 책상 2개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사유는 크고 넓어 보였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복지 외교 분야 질문이 오가는 동안 보수ㆍ진보라는 이분법적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 논란과 관련해선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표 되는 복지만 하려는 정치가 복지를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고 단호하게 규정했다.
-4ㆍ13 총선이 끝나고 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무엇을 하며 지냈나.
▲연구소를 개설해 나름대로 시대적 화두라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공(共)ㆍ생(生) 연구소다. 공존과 상생의 줄임 말이다. ‘몇 명만 앞서가는 사회를 다 함께 뛸 수 있는 사회로 만들 것이냐’가 시대적 화두이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이 불공평한 사회를 공평한 사회로 바꿀 수 있나’ 하는 고민을 이 공간에서 정리해 보겠다는 포부가 있다. 고민의 결과를 ‘오세훈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담아내고 있다. 최근 나온 첫 번째 권 제목은 ‘지금 왜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이다.”
-38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나는 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처음부터 거창한 비전이나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1993년쯤부터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참여할 계기가 만들어졌다. 2000년 국회의원이 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노동 문제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경제를 바라보는 눈도 중요해지고, 조금씩 시각이 다양해졌다. 서울시장 직을 수행하면서 외교ㆍ안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을 다뤄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거기서 한 차원 다른 소명감이 생긴 것 같다.
-그 소명감이란 게 뭔가. 다른 말로 오 전 시장이 보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경쟁에서 공존으로’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저성장, 저고용, 저소비가 새로운 표준이 되는 ‘뉴노멀’(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 기준) 시대다. 전 세계가 장기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고, 한국도 그런 단계에 들어섰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된,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되려면 공존과 상생의 가치가 내재화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쟁에서 공존으로 우리사회의 가치가 이동해야만 하는 그런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이슈가 되면서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강화한 이른바 오세훈법(정치자금에 관한 법)이 다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김영란법은 물론 과격한 법이다. 하지만 이번에 과감하게 시행해 대한민국 대도약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은 신뢰사회로의 변화를 30년 걸릴 것을 5년, 10년 만에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초가 될 것이다. 핵심은 ‘더치페이’ 문화다. 3년이면 더치페이 문화는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5만원 밑으로 하자 이런 논쟁은 무의미해진다. 오세훈법을 시행할 때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참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그렇게 갈구하는 반부패ㆍ투명사회, ‘갑질’이 줄어드는 사회에 열 걸음 정도 가까이 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저성장, 그리고 수저 계급론으로 나타나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진 자의 양보가 선행돼야 한다. 북유럽 최대 재벌 라울 발렌베리 가문 사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발렌베리 그룹은 스웨덴 국부 창출의 30%를 담당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재벌ㆍ독점재벌 위치에 있는 기업이면서도 국민적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경영을 하지만 수익의 85%는 사회에 돌려준다. 병원 하나 짓는 식의 사회적 기여가 아니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중장기 연구개발(R&D)사업에 투자하는 등의 공유가치 창출 수준으로 협력이 이뤄진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를 몇 십 년 전에 겪었던 스웨덴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은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격랑이 일고 있다. 외교와 국방에 대한 철학은 어떠한가
▲해군력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악기 없는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19세기에 나온 얘기니까, 해군력은 국방력으로 바꿔도 될 것이다. 국방력이 뒷받침 안 되는 외교는 물거품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지난 5년 동안 탄도미사일 시험을 31번했고 올해만 19번을 했다. 4차 핵실험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는 어떤 논의가 이뤄져야 정상인가. 우리도 핵을, 미사일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당연한 수순 아닌가. 하지만 세계 평화를 얘기하는 우리가 핵무기를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상대의 공격을 100% 막을 수 있는 체제가 아니면 필요 없다는 말도 논리적으로 꼭 맞지는 않다. 지금 수준에서 최선의 과학기술을 동원하는 게 맞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우리 돈으로, 우리 기술로 해야 한다. 자주 주권국가라고 하면서 늘 미국 신세를 져서야 되겠나. 그리고 사드 배치와 관련해 북한 핵 문제가 사리지면 사드를 한반도에서 바로 철수한다는 협상을 미국과 하고 이를 공표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잘하고 있는 걸까.
▲박근혜 정부에 대해 웬만하면 기대감을 표시하는 수준으로 긍정 평가해왔다. 그런데 정말 갈수록 실망스러운 게 제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 공천 국면에서 유승민 의원을 둘러싼 공천 파동을 지켜보면서 실망을 크게 했었다. 새누리당은 공당이고, 국가의 시스템 가운데 하나인데, 이걸 무슨 사유물처럼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를 들자면 정말 한이 없는데, 그런 국민적 실망이 총선 결과에 반영된 셈인데, 속 시원한 반응이 지금까지도 없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도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함과 동시에 거취를 표명했어야 정상적인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게 평가라 하려고, 긍정 평가 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고, 제가 몸담은 새누리당 소속 대통령이기 때문에 아직도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기대를 담아서 평가를 하고 싶다.
-명시적으로 다시 묻는다. 내년 대선에 나오나.
▲대선에 나간다고 한다는 건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을 때, 자신의 능력이 거기에 미친다고 생각할 때 결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 숙고하는 중이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지만 당내 세가 부족해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는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충실히 해 나가면서 변수들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행보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인 오세훈은 한 마디로 어떤 사람인가.
▲국면마다 정치인 오세훈을 스스로 정의하는 게 달라질 수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는 저 스스로 ‘대한민국 역사를 써나가는 하나의 벽돌이다’라고 생각했다. 현금 살포형 복지는 대한민국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경고에 제 역사적 소명의식을 담은 거다. 저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해도 그 벽돌 쌓기를 계속해 가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미완성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저술이 됐든, 강연이 됐든, 직접 정치가 됐든 간에 최선을 다해 크고 작은 벽돌을 대한민국 역사에 쌓아가고 있다. 평가는 역사가 하고, 국민이 하는 거다.
-정치적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 있는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자주 인용한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에 잠시 머물고 있다 떠나는 존재로서, 제 존재의 흔적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행복해진다면, 보람 있는 인생이고 행복했던 인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늘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다.
<
대담=김호기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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