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인터뷰-유미 호건 여사를 만나다
▶ 아시아계 최초 주지사 퍼스트 레이디 2년
유미 호건 여사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한국사람임을 강조하면서 “후세 사람들이 봤을 때 대한민국의 딸로서 부끄럽지 않게 잘했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유미 호건 여사(58·한국명 김유미)가 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로서도 미국에서 처음으로 주지사 퍼스트레이디가 된 지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지난 10일 호건 여사를 애나폴리스 주지사 관저에서 만나, 지난 2년간 주지사 부인으로 쉼 없이 달려온 삶과 또 앞으로 남은 2년간의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지사 도전·암 극복…‘긍정의 힘’으로 성공
한·흑갈등 극복 노력…한인도, 지역사회 참여를
우리 후손들을 위해 한인끼리 무조건 도와주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여성
유미 호건 여사는 세 딸을 둔 싱글맘 이었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삶의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부동산 개발업자 래리 호건을 만나, 그를 주지사로 만들고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퍼스트레이디가 되자마자 남편인 래리 호건 주지사가 암 선고를 받지만 여기에도 굴하지 않고 1년 반 가량의 극진한 간호로 남편의 암을 극복하게 한다.
그녀는 또 민주당 텃밭인 메릴랜드주에서 공화당 후보인 남편을 적극적으로 도와 호건 주지사에 대한 주민들의 호감도를 부쩍 높이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남편이 취임한지 90일만에 볼티모어 폭동이 일어났고 폭동후 2주 만에 남편과 함께 한국, 중국, 일본을 공식 방문했다. 그런데 방문 마지막 행선지인 일본에서 남편의 목젖에 이상한 것이 발견됐다. 그리고 바로 귀국한 후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가 암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 후 1년 반 동안 남편의 간호사로서 그리고 남편을 대신해 부주지사와 함께 행사에 참가했다. 특히 6개월 동안 남편은 1주일에 5일 동안은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다. 너무나 힘들었다. 남편은 병원에 사람들을 불러서 계속 일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 추수감사절을 즈음해 남편의 암이 완전히 치료됐다. 정말 기뻤다.”
◆볼티모어 폭동 치유 위해 노력= 호건 여사는 볼티모어에서 ‘그레이 사건’으로 인해 폭동이 일어난 후 1년이 지났던 지난해 4월 메릴랜드 대학 인근에서 한국문화와 음식을 알리는 행사를 가졌다. 올해 4월에도 이곳에서 행사를 갖는다는 계획이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지난 2년은 남편 간호에 힘을 쏟았다면 앞으로 2년은 한·흑 갈등 극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이 이제 2년 남았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특히 한·흑갈등 극복을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 이제 우리 한인들이 지역사회에 한인사회를 오픈하고 커뮤니티와 함께 해야 한다. 이제 우리 한인들도 자원봉사를 통해 커뮤니티와 함께 해야 한다. 엘리콧 시티에서 홍수가 났을 때 한인들이 그곳에 많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 한인 자원봉사자 참여가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쉬웠다.”
◆한인들 유권자 등록에 앞장= 호건 여사는 한인들이 있는 곳에 가면 항상 유권자 등록을 강조한다. 미국에 사는 한인 수가 적은 만큼 우리는 더욱 열심히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에 참여해야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자녀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투표에 참여해야 하고 민주·공화당을 떠나 한인과 관련된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편은 자신을 ‘한국사위’라고 부르면서 한인 사회와 관계된 일이면 많은 관심을 갖고 도와왔다. 나는 볼티모어 폭동이 발생한 후 가든교회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한인들을 만났다. 남편도 많은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한인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고심하고 행동을 취했다. 또 도로이름을 ‘코리안웨이’로 명명하기도 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한국 사람이 주류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 사람이 연결됐을 때는 무조건 밀어주고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유미 호건 여사가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세명의 딸과 세명의 사위 및 손녀와 함께 주지사 관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전참전용사에 감사표시= 유미 호건 여사를 워싱턴DC 소재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서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 한국전참전용사협회에서 대한민국의 딸로서 기념행사에 올 수 있겠냐고 요청하면 만사를 마다하고 참석한다.
한국전참전용사들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미국에 올수도 없었고 이렇게 퍼스트레이디도 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한국이 없고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부르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이 뭔지,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도와줬는지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의 힘 강조하는 희망 전도사= 호건 여사의 힘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한 힘 때문에 세 자녀를 홀로 키웠고 또한 2014년 민주당 텃밭인 메릴랜드에서 남편이 주지사로 출마했을 때 주위의 다른 모든 사람이 안된다고 했을 때도 그녀는 된다고 믿었다.
“차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있으면 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안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2014년 남편이 메릴랜드 주지사로 출마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됐다. 선거 당일 CNN등 모든 미국방송에서 좌담회 등을 통해 안된다고 했다. 선거후 남편의 암이 3기말에서 4기로 들어갔을 때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결과는 치료됐다.”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 강해= 호건 여사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중 수차례 대한민국의 딸임을 강조했다.
그런 이유에서 주지사 관저에 처음으로 김치 냉장고를 들여 놓았고 김치를 직접 만들어 주지사 관저를 찾는 사람들에게 줘 한국의 맛을 전했다. 또 관저에서 열리는 행사에 돼지 불고기 등 한국음식을 해 메릴랜드 주류사회에는 한국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호건 주지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이제 한국 돼지 불고기라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봤을 때 대한민국의 딸로서 부끄럽지 않게 잘했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퍼스트레이디가 한국 사람이니까 주지사 관저에 한국에서 정치인들도 오고 대학생들도 방문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많은 비즈니스들이 메릴랜드에 와서 메릴랜드에 도움이 되고 한국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내년에 남편이 재선에 당선된다면 다시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유미 호건 여사는
호건 여사는 전라남도 나주에서 양계장을 하는 부모님에게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만 19세에 미국에 왔다. 캘리포니아에서 살았고 이후 텍사스를 거쳐 메릴랜드에 왔다. 이후 메릴랜드 MICA(메릴랜드 미술대학)에서 학사, 아메리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MICA에서 가르치고 있다. 킴 벨레즈, 재미 스털링, 줄리 김 등 세 딸이 있다. 세 명 모두 결혼했으며 손자와 손녀도 있다. 첫째 사위는 푸에르토리코 인이고 둘째 사위는 미국인, 셋째 사위는 한인이다.
남편인 호건 주지사(61)와는 2000년에 미술관에서 만나 4년 후인 2004년 결혼했다. 이후 10년이 지난후 남편의 주지사 당선을 도왔고, 2015년 메릴랜드 주지사 관저에 퍼스트레이디로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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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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