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뉴욕대한체육회 제19대 김일태 신임회장
6월 댈러스 전미체전 종합우승 목표로 동분서주
‘범 한인사회 운동회’ 열어 생활체육 활성화 꾀할 것
꿈나무 발굴 육성·노인 건강 프로그램 지원도
뉴욕대한체육회 제19대 김일태 신임회장이 지난 3월 출범했다. 포부는 꿈나무 발굴과 생활체육 활성화에 주력하는 것. 현재 목표는 미주 한인체육대회 종합우승. 올해 6월 댈러스에서 열리는 미주체전 준비에 한창인 그를 만나봤다.
■전미체전 우승을 향해
그는 현재 가장 시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행사로 오는 6월 댈러스서 열리는 미주체전을 꼽는다. 목표는 종합우승으로 정했다. 출전규모는 18개 종목에 선수와 임원진 등 200명 정도. 축구, 배구, 농구, 볼링, 씨름 등 금메달이 확실한 종목들이 참가한다. 태권도도 새로 참가한다. 비인기종목인 배드민턴, 펜싱, 육상 등의 선수단도 모집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종합우승을 자신하는 이유다.
전미체전 소요경비로 10만 달러를 책정했다. 예상목표를 향해 모금활동에 열심이다. 미주체전 비용 중 항공료는 각자 부담이다. 체육회는 숙박과 각종 현지 체류비용을 맡게 된다. 시일을 촉박하게 남겨 놓은 상황에서 준비 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 체육회와 한인사회 모두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종합우승을 달성하기 위해 각 가맹단체의 선수 선정과 모금활동, 행정적인 부분까지 더욱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는 “출범 후 짧은 시간 안에 미주체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한인들의 많은 성원이 절실하다. 뉴욕이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한인 모두의 많은 관심, 적극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응원을 바란다”고 당부한다.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
그는 1978년 발족 약 40년 역사의 체육회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선배체육인과 전직 회장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성장한 것을 인정한다. 20여개 가맹단체의 왕성한 활동도 감사하게 여긴다. 이제는 그 역량을 모아 체육인 위주의 모임에서 탈피를 시도하고자 한다. 체육인은 물론 한인사회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육회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생활체육 활성화다. 그것이 회장에 나선 최우선 이유다.
그의 생활체육 첫 프로젝트는 ‘범 한인사회 운동회’다. 한인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오재미로 박을 터뜨리고, 큰 공을 굴리고, 줄다리기를 하고, 가족들이 손잡고 달리기 등 한국운동회처럼 다양한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의 응원 함성 속에서 보는 사람이나 참여하는 사람 모두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런 운동회를 꼭 열 계획이다. 개최시기는 내년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올 가을 개최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운동회를 열면 한인 1세들은 추억의 향수를 느낄 수 있고, 한인 2-3세들은 한인사회에 참여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처럼 체육회가 체육인뿐만 아니라 한인사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앞장서는 것이 바로 생활체육의 활성화인 셈”이라고 말한다.
■한인 2세 체육인 발굴육성
그는 어려서부터 씨름을 배웠다. 스승은 아버지. 동네아이들과 섞여서 씨름 기술을 전수 받았다. 하지만 몇 해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고등학교 때는 씨름 대신 유도를 배웠다. 2년 동안 배우면서 시합에 3번 출전 모두 입상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군 제대 후에는 다시 씨름을 하게 됐다. 서울 동작구 대회에 나가 6년 동안 우승했다. 서울시 대표로 전국체전에도 3번 출전했다. 입상은 못했지만 누구도 상대할 수 없다는 5관왕 출신을 예선전에서 이겼다. 그 때 짜릿했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한다.
뉴욕에 와서는 지난 2004년 추석맞이 씨름대회 구경을 갔다가 선수로 출전 우승을 차지했다. 씨름협회와 인연을 맺고 임원으로 활동한 이유다. 2012년부터는 7, 8대 회장을 역임했다. 회장 당시 한국에서 열린 세계씨름대회에 흑인, 백인 선수들도 포함된 뉴욕대표팀을 이끌고 2번 출전하기도 했다. 그 때 용인대학교와 각 체육대학 관계자들과 돈독한 인연도 맺었다.
그는 운동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에게 운동은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이들이 운동 하나만 잘해도 자신감이 생기고 친구관계가 좋아지기 때문이란다. 이민사회에서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은 건강과 더불어 정체성과 애국심마저 강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가 재능 있는 한인 2-3세 체육인 발굴과 육성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유능한 꿈나무를 발굴해 인연을 맺고 있는 한국의 체육대학 관계자들의 전문 교육을 통해 한국대표선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 계획이다. 한인노인들을 위한 각종 건강증진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단체의 요청에 직접 가서 도와주는 ‘찾아가는 생활체육’을 펼칠 방침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생활체육을 즐기는 과정에서 재능 있는 꿈나무들이 발굴되고 선수들이 은퇴 후 생활체육 현장에서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한인 모두가 생활체육을 맘껏 즐기면서 재능 있는 한인 2세들을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체육회가 나갈 방향”이라고 제시한다.
■생선과의 인연
그는 1960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2남1녀의 장남이다. 농사일을 하던 아버지는 다정다감했고 아내사랑이 남달랐다. 그런 아버지가 6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공부하며 가장 역할을 했던 이유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외가 집이 있는 서울로 상경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어린 삼남매를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고자 고등학교를 해군에서 지원하는 해군장학 위탁생으로 공부해서 해군에 입대했다. 해군 하사관 시절 특진으로 소대장을 지내며 서울농대 통신대학을 다녔다. 군 제대 후에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도매상을 운영했다. 그 당시 중개인 자격증을 취득, 137명의 중개인 중 최연소 중개이었다. 그렇게 생선하고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0년 동안 운영하던 사업을 접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뉴욕 행을 택했다.
2000년 7월 고교 동창이 살던 뉴욕에 도착했다. 그 후 17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다. 처음엔 맨하탄 귀금속 공장에 취직했다. 1년 4개월을 보내며 귀금속 세팅, 디자인 등 각종 기술을 터득했다. 하지만 비즈니스 개업은 물거품이 됐다. 9.11 월드트레이드 센터 붕괴 사건이 발생하면서 보석 비즈니스가 붕괴된 것이다.
그 후 델리용품 배달 직원으로 취직했다. 철공소에서도 일했다. 그러다 2005년 자마이카의 생선가게를 인수했다. 장사가 잘돼서 브롱스에도 생선가게를 차렸다. 2년 후 잘 되는 가게 2개 모두를 처분했다. 그리고 소독업계에 뛰어들었다. 교육을 받고 라이선스도 취득하면서 비즈니스도 번창했다. 하지만 위생등급제 시행으로 시간은 많이 걸리고 수입을 적어지면서 또 다시 업종을 바꾸었다.
때마침 브롱스에서 자신이 운영하던 생선가게가 매물로 나왔다. 망설임 없이 가게를 다시 인수했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생선가게는 어머니와 초기이민생활의 추억이 담긴 그런 곳이 된 셈이다.
■복음사역의 길
그는 아이들을 어른처럼 대한다. 인격형성이 진행 중인 아이 때의 기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려서 충격적이거나 칭찬 받는 일은 잊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 큰 딸이 유치원 때 집에 온 친구에게 아버지가 주스를 쟁반에 받쳐갔다 준 것을 기억하는 것을 알고는 더욱 아이들을 어른처럼 대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충실하게 수행한다. 군대생활 할 때는 소대장 표창을 받았다. 서울시 씨름 선수단 시절엔 조순과 고건 서울시장에게도 표창장을 받았다. 자신에게 맡겨준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한 결과다. 미국서도 마찬가지다. 씨름협회 회장으로 체육회장 상을 수상했고 한인사회에 공헌한 공로로 정치인들에게 공로상도 받았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그가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는 행복을 가정이라 여긴다. 나이 들수록 부부지간에 오순도순한 표현과 아끼고 챙기는 모습, 아이들의 우애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등 가정에서의 일 그 자체가 행복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나그네라 자신 있게 말한다. 천국의 문을 확실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 1번 주어진 삶은 더욱 확실하게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신앙심이 돈독하다. 선교사의 길이 자신의 꿈이다. 어려서부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것이 곧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철학이다. 은퇴 후에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출근하듯 성경책을 들고 전도활동을 하며 살아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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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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