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양념을 만드는 맥코믹(McCormick)이라는 회사가 있어 바람이 집 방향으로 부는 날이면 미지의 양념 냄새가 바람에 솔솔 실려 온다.
익숙한 냄새보다는 처음 맡아보는 생소한 냄새인 경우가 많은데, 창문을 열고 흠뻑 들이마시고 싶은 냄새가 있는가 하면 얼굴을 찡그리며 창문을 급히 닫게 하는 냄새도 있다. 이렇듯 냄새에는 좋은 냄새와 원치 않는 냄새가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향기”라고 구분해서 부르는 냄새는 항상 신비롭고 은은하다.
나는 어릴 적엔 사람에게선 향기가 아니라 냄새만 나는 줄 알았다. 흔히들 총각 냄새라든가, 홀아비 냄새라든가 하는 결코 상쾌하지 못한 예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에게서 맡았던 냄새 또한 그랬다. 결혼 생활 3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10개월 된 아들을 홀로 키우신 할머니는 말년엔 시력을 잃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다. 어릴 적 나의 기억 속의 할머니에게선 움직일 때마다 삶에 찌든 노인 냄새가 났었다. 물론 물리적인 체취였는데 그 당시 나의 안목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반면에 중학교 일학년 때 국어 선생님의 체취는 단연 향기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교사 발령을 받은, 단아한 한복차림의 선생님으로부터 처음으로 ‘분위기’라는 말의 의미를 배웠던 것 같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읊으시는 시 한 편에 12세 소녀의 감성은 문학의 감미로움에 흠뻑 젖어 들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시 낭송의 기쁨을 배웠고 그로 인해 내가 또한 국어교사가 되어, 나의 학생들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시 암송을 시켜 문학의 즐거움을 전해 주었으니 그것은 바로 삶의 향기였다.
이렇듯 사람에게서도 꽃처럼 향기가 난다는 걸 배우기 시작했고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모와 말솜씨에서 풍기는 향기는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꽃향기가 항상 그곳에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멈추어 향기를 즐기며 예찬하고 가기도 한다. 꽃향기도 다가가 코를 대고 음미하듯이 언제부터인가 나도 사람에게서 냄새가 아닌 향기를 맡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이 사람의 외모나 객관적인 모습을 뛰어넘어 성격이나 행동을 주시하게 하고 피부색깔이나 종교의 벽을 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미국인 친구 비(Bea)는 15년 전 기차로 출퇴근하면서 기차에서 만난 친구다.
미국사람인 데다 나이가 나보다 열 살이 더 많아 한동안은 일상적인 인사만 오갔다. 한참 후 그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하자, 내가 걸림돌이라 생각했던 나이 차이는 엄마 같은 자상함으로 여기게 되고 서로의 다른 문화는 대화를 이끄는 소재가 되어 서로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우리는 선입견을 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점보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냥 무심히 지나쳤을 관계였는데 서로에 대한 약간의 관심과 노력이 평생의 우정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자 숨겨있던 그의 장점들이 빛을 발하며 나에게 향기를 뿜기 시작하였고 난 그 향기에 지금도 젖어 지낸다.
가끔 지인들 한사람 한사람을 생각하며 그들은 어떤 향기를 갖고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하는 때가 있다. 그들중에 항상 만남이 기다려지고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은은한 향기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할머니의 삶에 지친 냄새가 생에 대한 인고의 향기로 변하여 그리움에 젖게 하는 것은 세월이 내게 준 지혜라 생각된다.
<
김 레지나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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