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줄 왼쪽부터)유영일(파티쉐), 이해영(부동산 에이전트), 이준현(사진가), 나종윤(무역업). (아랫줄 왼쪽부터) 이현숙(화가), 하승완(자영업), 송경자(주부), 성기영(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1969년 미주한국일보 창간과 함께 태어나 성장해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올해 49세가 되는 1969년생들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창간둥이’ 8인의 삶과 희망, 그리고 한국일보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유영일(파티쉐)= 빵 만드는 사람으로 한 길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파티쉐로 빵과 케이크를 만들고 또 창작했으며, 대학 제과제빵과에서 가르치고 또 연구해왔다. 미국으로 2003년 이민 왔는데 빵 만들기를 천직으로 알고 있어 지금도 애난데일에 건강빵집 ‘오 브레드’를 열어 아내와 운영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그 자체가 기쁜 일이다. 생일이나 졸업 등 축하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빵집을 찾는다. 즐겁고 행복할 때 나누는 음식. 그래서 나는 이 일이 좋다. 대부분의 쉐프가 그렇듯 내 음식으로 사람들이 더욱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미국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 나의 빵이 작은 위로가 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한국일보를 선택해 구독하면서 독자들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 좋았다. 열심히 만든 신문이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을 배려하고 아끼는 요리사의 그것과 같게 느껴진다.
▲이해영(부동산 에이전트)= ‘정직하고, 노련하고, 활기차게!’.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며 내가 추구하는 신념이다. 특별히 상업공간을 전문으로 한다. 고객의 비즈니스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상권을 분석해 사업성공의 꿈을 펼칠 공간을 찾아내고 제공하는 일이 좋다. 앞으로 프로페셔널 부동산 에이전트로 더욱 성장해가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어느덧 성장해 올가을 대학생이 되는 아들이 장차 훌륭한 사회구성원이 되기를 바란다. 대학생활을 충분히 누리며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자신의 인생에 날개를 달아줄 직업을 찾아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 항상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남편의 사업도 더욱 번창해가기를 기원한다.
▲이준현(사진가)= 내 시간의 반은 작품 활동에, 그리고 반은 사진을 가르치는데 쓰고 있다. 몇몇 작가들과 함께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고, ‘아트리그’의 회원으로 있으며 ‘더 해피그래피’ 사진 커뮤니티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올 가을 큰 사진전을 앞두고 있다. 수개월째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인데, 일본 사진가들과의 교류전이 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가 완성도 있게 성황리에 치러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나의 개인작품 활동도 잘 해가고 한인사회의 꿈인 커뮤니티센터 개관 소식도 접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두루두루 좋은 소식이 많은 한인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일보는 함께 만들어가는 신문이다. 평소에는 독자이지만 때론 취재원이 되기도 한다. 사진으로 큰 상을 받아 한국일보에 기사가 실린 적도 있어 감사하다.
▲나종윤(무역업)= 한국과 중국에서 하이앤드 오디오를 구입해 미국에 총괄 판매하는 무역회사를 하고 있다.
수출입 비즈니스는 국제무역협정 등에 따라 관세 문제 등의 변화가 많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무역상대국가를 한국, 중국 외에 더 넓혀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기에 항상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다.
사업에 매진하느라 바쁘게 지내는 가운데 훌쩍 커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흐뭇하고 대견하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 고등학생 아들과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서로 아끼며 알찬 일상을 가꿔가길 바란다.
한국일보를 읽을 때면 ‘중립적인 시각’이 느껴진다. 열린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보도해서 좋다. 중도적 가치관과 사고의 유연성이 오늘의 한국일보를 이끌어온 힘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현숙(화가)=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한국과 미국의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혼합재료로 추상미술 작업을 주로 한다. 뉴욕과 버지니아, 메릴랜드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주로 하고, 버지니아에서 미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보통 한해에 1백에서 2백여 점을 그리는데, 다작의 원동력은 ‘완벽한 한 점’을 향한 열정이다.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죽기 전에 단 한 점, 진정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기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이 느낌 이대로, 작가로 승부를 보고 싶다. 일상에 안주하는 삶을 넘어서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또 그린다. 몇 년 전 한국에서 환경부장관 주최 세계환경연합 기념전시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실린 한국일보 기사가 지금도 액자에 담겨 내 곁에 있다. 수없이 이사를 다녔지만 나와 늘 함께 있어 볼 때마다 한국일보에 정이 가곤 한다.
▲하승완(자영업)= 이민 온 지 어느덧 27년.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거주하며 워싱턴 일원에 몇 개의 사업장을 두고 자영업을 하고 있다. 많은 직원들을 필요로 하는 자영업에 있어서 인력은 곧 비즈니스 자산이다. 그처럼 소중한 직원들이니 만큼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직원의 가족들도 건강하고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 이민가정에서 사춘기 자녀와 부모가 맞게 되는 고민들이 내 이야기가 되면서 ‘이제 진짜 어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현명하게 이 시기를 보내서 아이와 부모가 다함께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필요한 배경지식들을 한국일보에서 얻어왔다. 직원들의 신분 문제가 중요하다보니 비자 발급이나 영주권, 이민국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열심히 읽게 된다.
▲송경자(주부)= 바느질을 좋아하는, 두 아이와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주부다. 지난 2000년 미국에 왔으니 어느새 18년. 꽃 같던 내 나이도 쉰이 목전이다. 아이들도 제법 컸으니 이제 나 자신의 직업을 가져보고 싶다. 즐겁게 일하며 가계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일이면 좋겠다. 내가 잘하는 ‘바느질’에 관한 일도 괜찮지 싶다. 바쁘게 달려오느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취미생활도 즐겨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무조건 행복하고 건강하게’ 인생을 소중히 가꿔가기를 희망한다. 나의 생활에 길잡이가 되어준 한국일보를 통해 그동안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떠나온 고국의 뉴스와 꼭 알아야할 정보들을 두루 얻어왔다.
특히 한국일보는 이민자 가족의 주요 관심사인 신분, 교육, 그리고 생업에 연관있는 경제분야를 집중으로 다뤄주니 도움이 된다.
▲성기영(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이나 엄마로서도 열심을 다해왔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10살, 13살 두 딸들이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때로는 바쁘게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나에게 ‘집은 곧 엄마’였다. 전업주부로서 항상 집을 지켜주신 내 어머니, 원할 때면 언제든 달려가 안길 수 있도록 같은 자리에 있어준 부모님을 생각하면 바로 그 사랑의 힘으로 내게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꿋꿋이 헤쳐낼 수 있었지 싶다.
부모님이 읽으시는 한국일보를 나도 오래전부터 가까이서 접해왔다. 경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에 관한 기사를 주로 읽었다. 어느날 딸아이로부터 “엄마, 미국사람들도 코리아타임스를 알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국일보가 우리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준다는 사실에 한결 더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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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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