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잔도 덥다, 1994년의 댈러스를 기억하라
▶ 독일전도 관건은 체력, 24년 전 36도 무더위 이겨냈던 것처럼 명승부 재연하길
로스토프에서 멕시코전 패배 뒤 기자회견과 믹스트존 인터뷰를 마치고 미디어센터로 돌아왔다. 설상가상 스웨덴이 독일에 1대0으로 앞서고 있었다. 이렇게 조기 탈락이 확정되는 것인가 하는 한숨이 나올 때 작은 가능성이 살아났다. 후반 추가시간 독일 토니 크로스의 극적인 결승골이 터지며 한국 기자들은 다시 바빠졌다. ‘그놈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느라 바빴지만 확정된 절망이 아닌 일말의 희망을 안고 조별리그 최종전이 열리는 카잔으로 이동하게 됐다.
크로스의 골이 준 것이 희망인지, 고문인지는 3차전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스포츠가 가치 있는 것은 절대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이변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독일은 14개월째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월드컵의 디펜딩 챔피언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그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제롬 보아텡(퇴장), 제바스티안 루디(부상)의 결장도 변수다. 한국도 기성용, 박주호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해 전력의 타격이 크다.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날씨다. 드넓은 러시아는 도시별 기후가 제각각이다. 한국이 베이스캠프로 쓰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섭씨 20도 전후로 한국의 가을에 가까운 날씨다. 하지만 멕시코와 2차전이 열린 오후3시의 로스토프는 33도를 오르내렸다. 더위는 멕시코전에서 변수로 작용했다. 양팀 모두 여름 기후에 익숙하다고는 했지만 반복되는 이동과 짧은 경기 간격은 결국 후반 막판 한국과 멕시코의 발을 느리게 만들었다. ‘만일’은 늘 결과 뒤의 아쉬움이지만 우리의 체력이 우위였다면 후반 막판의 상황은 볼 만했을 것이다.
독일전도 체력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카잔도 한국과 독일의 경기가 열리는 오후5시의 기온이 30도에 육박한다. 경기 간격은 사흘로 1·2차전 사이의 나흘(독일은 닷새)보다 더 짧아졌다. 독일은 1·2차전을 각각 오후6시와 9시에 치르며 더위를 피해갔다. 경기가 열린 모스크바와 소치의 기온은 22도와 23도였다.
이제 더위에 적응해야 하는 쪽은 독일이다. 이번 대회 독일의 문제점은 느린 백코트에 있다. 라인을 한껏 올려 경기를 점유하며 상대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오히려 역습을 맞았다. 그때마다 양 측면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들의 수비 복귀가 뒤처지는 장면이 도드라졌다. 센터백들이 곧바로 위험에 노출됐고 보아텡의 경우 무리한 수비를 하다가 퇴장을 당한 경우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에서 계산하지 못한 더위까지 극복해야 한다.
1994미국월드컵의 상황과 닮았다. 당시에도 디펜딩 챔피언이던 독일을 상대로 한국은 16강 진출의 희망을 잡기 위해 도전했다. 전반에 3골을 허용하며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지만 한국의 체력과 정신력은 36도를 넘어선 댈러스의 무더위를 이겨냈다. 기동력이 떨어진 독일은 한국의 기세에 밀렸고 황선홍, 홍명보의 골에 녹다운될 뻔했다.
한국도 이번 대회에서는 과거처럼 체력적 우위를 통해 상대를 흔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체력 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위기에서 늘 100% 이상을 발휘하는 기질이 한국축구엔 있다.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기성용과 박주호는 호텔에서의 휴식과 치료 대신 25일 진행된 훈련 참관을 택하며 동료들을 응원했다. 독일에 기술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사흘의 훈련으로 뒤집긴 불가능하다. 지겹지만 다시 한 번 의지와 정신력에 기대야 한다. 24년 전 댈러스에서의 명승부를 재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카잔=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서울경제신문은 2018러시아월드컵 시즌을 맞아 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의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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