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15일 2차 대전 종전 소식을 들은 수만명의 인파가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쏟아져나왔다.
검은색 세일러복을 입고 하얀색의 동그란 군모를 눌러 쓴 한 수병도 그중 하나였다. 종전을 기뻐하며 길을 걷던 그는 하얀색 간호사 복장을 한 여성을 보고 허리가 으스러지게 껴안고 입을 맞췄다.
라이프 잡지의 사진기자인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는 때마침 옆에 있다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고 셔터를 눌렀다.
‘대일전승일(V-H Day)의 타임스스퀘어’라는 제목으로 라이프지 종전 특집호에 실린 이 사진은 2차 대전 종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컷으로 세계 사진사에 길이 남았다.
아이젠스타트 기자는 당시 수병과 간호사가 바로 인파 속으로 사라져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싶어 했고 라이프지는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찾아 나섰다.
그날 타임스스퀘어에서 종전의 기쁨에 들떠 키스한 사람이 많아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1980년 라이프지에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남자가 11명, 여자가 3명에 달할 정도였다. 몇 년에 걸친 확인 작업 결과 주인공은 당시 21세인 간호사 그레타 짐머 프리드먼과 역시 21세인 수병 조지 멘돈사로 밝혀졌다.
두 사람은 사진이 찍힐 당시 서로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
프리드먼은 과거 인터뷰에서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리로 나왔는데 갑자기 한 해병이 나를 껴안았다”며 “그는 전쟁이 끝나 복무지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기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멘돈사가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CNN이 19일 보도했다. 프리드먼이 타계한지 3년 만이다. 멘돈사는 그 사진 하나로 현대사에서 가장 격정적인 키스를 한 사람으로 기억되겠지만 이는 순전히 시대를 잘 맞춰 태어난 덕분일 수 있다.
그는 그날 종전 소식을 듣고 기뻐 거리로 나와 맥주를 여러 병 마셨다. 술에 취했는지 옆에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낯선 간호사를 껴안고 키스했다. 2019년을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는 그냥 술 취한 성폭력범이다.
2015년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을 재현한 동상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설치됐을 때 프랑스 페미니스트 단체는 “성폭력의 상징을 평화의 상징으로 둔갑시켰다”며 철거를 주장하기도 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데 혹시라도 멘돈사를 따라 하는 사람이 있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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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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