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여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무령왕은 과감한 추진력을 지닌 군주였다.
신하들은 오랑캐 옷차림인 호복(胡服) 착용을 반대했지만 그는 소매가 좁고 길이가 짧아 실용성이 있는 호복을 자주 입었다.
춘추전국시대 대부분의 왕은 수레를 타고 다니기 좋아했지만 그는 말을 타고 직접 선두에서 기병을 지휘하고는 했다. 무령왕은 후계자를 선정할 때 뜻밖의 선택을 한다. 왕비가 낳은 아들 대신 후궁 맹요가 낳은 열두 살 아들을 혜문왕으로 내세웠다.
그는 혜문왕을 옥좌에 앉힌 뒤 자신을 주부(主父)로 부르게 하며 실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상왕으로 남아 절대권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신하들에게 밀려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동양 역사에 기록된 첫 상왕의 사례다.
상왕은 자신이 죽기 전 왕위를 다음 왕에게 물려준 전왕을 부르는 호칭이다. 남북조시대에는 북제에서 고담이 왕권을 아들 고위에게 물려주고 고위는 고항에게 물려줘 자신은 태상황이 되고 고위는 상황이 됐다는 기록도 있다.
명나라 정통제의 경우 몽고 부족과의 전쟁에서 생포되자 조정은 그의 이복동생 주기옥을 경태제로 옹립했다. 상왕이 돼 돌아온 정통제는 경태제의 견제를 받아 유폐됐지만 경태제가 앓아 누운 틈에 다시 복위하는데 성공한다. 조선 시대에는 태조·정종·태종·단종 등이 상왕이 됐다. 고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하는 비극을 겪은 후 상왕으로 물러났다.
아키히토 일왕이 30일 퇴위식을 끝으로 30년간의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마무리한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에도 시대인 1817년 고카쿠 일왕 이래 202년 만이다.
종신 일왕 체제로 바뀐 1868년 무쓰히토 일왕 이후로는 처음이다. 올해 86세인 125대 일왕 아키히토는 아버지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한 후 1989년 즉위했다.
아키히토의 뒤를 이어 큰아들 나루히토 왕세자는 5월부터 레이와(令和) 시대를 연다. 동양 왕조의 역사를 보면 상왕이 등장하는 시기는 격변기다. 군주제 시절에는 절대권력자인 왕이 두 명 이상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곧바로 비상시국을 의미한다.
아키히토 일왕은 건강을 이유로 생전 퇴위를 원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서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아베 신조 정부의 군사대국화 야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 가능한 국가를 꿈꾸는 이웃 나라의 정세 변화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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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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