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1970년대 한국, 흑백TV 시절의 어느 영양제 광고 문구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명배우 박노식과 박준규 부자가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됐던 광고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던 부모 세대. 자식들의 학교 성적에 일희일비했던 당시 이 광고문구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개구쟁이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과 대척점에 선 캐릭터. 개구쟁이 이미지는 명문학교, 대기업, 좋은 배우자, 부유한 삶이라는 ‘성공 공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자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했던 이 광고 문구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녀들에게 희망을 거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미국 부모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성인 자녀의 경제적 부양까지 떠맡느라 정작 본인들의 노년 삶이 위협을 받고 있다.
금융전문 웹사이트 ‘뱅크레이트닷컴’(Bankrate.com)이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자녀의 경제적 부양 정도를 묻는 질문에 17%의 부모들이 ‘상당한’(a lot) 수준이라고 답했고 34%의 부모들은 ‘어느 정도’(somewhat)라고 답했다. 결국 51%의 부모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인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느라 정작 본인들의 노후 준비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55세 이상이 직장생활에 나서고 있어 지난해 새 일자리의 절반을 채우기도 했다.
미국 부모들이 다 큰 성인 자녀를 경제적으로 부양하려는 마음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 바로 학자금 대출 빚이다. 대학 교육비가 매년 인상되면서 중산층 가장의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비싼 학비를 학자금대출로 막다보니 학교 졸업과 함께 빚 부담이 젊은 세대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소비자신용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29세 미국 젊은층의 총부채 규모는 2018년 말 현재 1조50억달러로,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빚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셈이다.
그렇다고 성인 자녀를 부양하는 부모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빚과 함께 대학문을 나선 자녀들을 돕는 부모들을 과잉 보호라고 지탄할 수 있을까. 과거보다 더 극심한 경쟁과 치열한 삶의 현장도 버거운데 빚 부담에 허덕이는 자녀들을 그냥 바라볼 부모가 어디 있을까.
기자의 둘째 딸도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딸 덕분에 사립 음악대학의 살인적인 등록금의 위력을 뼈속까지 경험했다. 한국에서 들어놓았던 각종 보험까지 다 해지하고 노후 대비는 커녕 경제적으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4년간 잘 버텨준 딸 아이가 자랑스럽다.
학자금 빚 부담을 안고 새출발을 하는 딸을 크게 안아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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