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놀이’도 좋고 ‘꽃놀이’도 좋지만 화려한 불꽃으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는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최고의 놀이다. 그런데 ‘불꽃놀이’가 영어로는 ‘Fireworks’다. 한국어로는 분명 ‘놀이’인데 영어로는 ‘일’(work)이 된다. 썰렁한 ‘아재개그’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언장담했던 역대 최고의 쇼, 워싱턴 DC 독립기념일 행사가 지난 4일 열렸다. 불꽃놀이에만 무려 75만 달러를 썼다고 한다.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에 트럼프 대통령은 후원자들의 기부로 치러졌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주는 후원금에 공짜는 없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지불해야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자기만족을 위해 수백, 수천만 달러의 정부예산을 펑펑 쓰는 상남자(?)가 있는 반면 그런 돈을 아껴서 의료비나 학비지원에 쓰자는 정치인도 있다. 과연 우리의 상식이 누구를 선택할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상남자의 재선을 예상하고 있다.
요즘에는 사소한 이슈 하나하나에도 진영논리로 대립하는 만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도 그저 ‘놀이’로만 생각할 수 없는 번거로운 논쟁거리, ‘일’이 되었다.
워싱턴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 벚꽃이 화창한 4월에는 수많은 상춘객이 워싱턴 DC를 방문한다, 바로 ‘꽃놀이’ 때문이다. 제퍼슨 메모리얼을 중심으로 강변을 따라 휘날리는 벚꽃은 워싱턴의 명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인들에게는 그저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슬픈 역사가 있다.
1905년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서로 묵인하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맺어졌다. 이를 계기로 일본 측이 1912년 미국에 벚나무를 선물했고 이는 미일 우호의 상징이 되어 매년 워싱턴의 봄을 장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 꽃을 보고도 아름답다 하지 못하는 꽃놀이 역시 ‘놀이’가 아니라 ‘일’이다.
어린 시절 최고의 놀이는 다름 아닌 불놀이, 불장난일 것이다. 얼마나 재밌으면 ‘밤에 오줌 싼다’는 루머까지 만들어 막았을까. 아마 재미도 중요하지만 자칫 놀이가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경각심, 사고예방을 위한 당부였을지도 모른다.
종종 시사만평가들은 전쟁위협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이를 ’미국의 불장난’으로 묘사하곤 한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우방국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대신 나서서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이제 그러한 시대는 끝났다. 세계 어느 나라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무기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누군가만 좋을 뿐이다. 이러한 불장난은 결코 ‘놀이’가 될 수 없는 심각한 ‘일’일 뿐이다.
‘불꽃놀이’도 좋고 ‘꽃놀이’도 좋지만 그저 남들 이야기다. “워싱턴에 수 십년 살면서도 한 번도 그런 놀이에 나서본 적이 없다”는 것이 한인들의 하소연이다. 이런저런 행사로 관광객이 몰리면 “놀면 뭐하나, 거리에서 뭐라도 팔아야지” 하면서 계속 일 생각뿐이다. 고단한 이민 생활, 그래서 한국어 ‘놀이’가 영어로 ‘일’이 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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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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