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언론과 정가에서는 느닷없는 이민자 수 논쟁이 벌어졌다. 유력 일간지가 1면에 ‘한국 떠나는 국민, 금융위기 후 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그 이유로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이 국민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1야당의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다”며 “해외이주 신고자수가 문재인 정권 2년 만에 약 5배나 늘어나 금융위기 후 최대”라고 밝혀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말하면 현 정권이 싫어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른 언론들의 ‘펙트체크’에 따르면 기사는 통계청 국정모니터링지표인 ‘e-나라지표’를 근거로 삼았는데, 전체 해외 이주 신고는 2017년 1443명에서 2018년 6330명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이는 2017년 12월 21일자로 해외로 이주한 국민을 대상으로 행정 편의를 위해 발급했던 여권인 거주여권제도를 폐지한 여파로, 취업이나 사업, 연고 이주를 제외한 기타이주신고가 급증한 탓이라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다. 기타이주신고는 기존 거주여권 발급자들 중 이미 영주권을 비롯한 장기체류자격을 가지고 해외에 거주 중인 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제외하면 2017년과 2018년 해외이주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더욱이 이 지표는 떠나는 국민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고 한다. 신고하지 않으면 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 현재로서는 한국을 떠나는 국민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번에 여당에서는 “착시적 통계수치를 악용해 국민 불안을 선동하는 가짜뉴스”라고 반박했고, 진보로 알려진 신문은 “사실을 비튼 정치선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을 지켜보는 실제 이민자는 아연하기만 하다. 해외이주를 제 나라가 싫어서 떠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이니 젊은이들의 해외 진출이 고질적인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떠들던 것이 불과 엊그제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정치인이나 고위 관리는 물론 역대 대통령까지 해외 동포는 한국의 위대한 자산이자 민간 외교 동력이라고 추켜세우던 것이 교언영색에 불과한 셈이 됐다.
이념이나 정략에 사로잡혀 민생을 팽개치고 서로 싸우는 한국 정치권을 보는 것은 이미 한국을 떠나있는 이민자가 보기에도 눈꼴이 시다. 그래도 국민들은 먹고 살겠다고, 나라를 살리겠다고 정든 땅을 떠나 해외로 나간다. 해외로 떠나는 사람을 조국을 버리는 사람으로 몰지 말고, 남 탓하지 말기 바란다. 당신들 때문에 한국 정치는 싫어도, 한국은 싫어하지 않는 게 이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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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찬 메릴랜드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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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해마다 6만명의 홍콩인이 해외로 이주하였다. 자유스럽고 안전한 땅을 찾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