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도 없다. 서랍을, 식기 세척기를, 식탁 아래까지 벌써 한 시간 남짓 꼼꼼히 살펴봤지만, 젓가락 한 짝이 없다. 아마도 시끌벅적한 모임 끝에 서둘러 치우다 쓰레기봉투에 딸려 나간 듯싶다. 젓가락 한 짝! 하나만으론 그 기능을 다할 수 없으니 열심히 찾기도 했지만, 몇 해 전 친구들과 홍콩 여행 때 사 온 추억이 담긴 기념품이기도 했다.
젓가락 파는 가게는 십여 개의 식당과 상점들 사이에 멀리서 언뜻 보기에는 작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 갤러리처럼 보였다. 사람은 많지 않으면서 햇살은 가득 차, 좀 더 먼 곳까지 간 일행을 편하게 기다릴 수 있겠다 싶어 들어 갔었다. 한데 구경을 할수록 묘한 매력이 생겼다. 왜였을까? 내가 젓가락으로 살아 온 동양인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젓가락 행진곡’처럼 서양인들의 젓가락에 대한 감정은 밝고 명랑함이 크지 싶다. 또 꼭 이것이 아니어도 먹는 데 지장이 없으니 그 애착도 동양인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동양 식문화에선 젓가락을 빼고 말하긴 쉽지 않다. 나라마다 그 길이가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고, 시대에 따라 나무로, 놋으로, 쇠로 그 재료를 달리 할 만큼 역사 또한 깊다. 은으로 만들어져 식탁의 품위를 높이기도 하고, 때론 선술집,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랫가락에 박자를 맞추기도 하니 젓가락은 어쩌면 우리네 삶의 모습일 것이다.
유리 진열장 안에 보드라운 천을 깔고, 그 위에 반듯하게 전시되어 있는 젓가락은 흡사 보석 같았다. 줄과 간격을 맞추고, 조명을 받아 벽에 걸린 젓가락들. 상술이라 할지라도 귀하게 젓가락을 다루는 주인의 맘 씀씀이가 좋았다. 백 여 가지 종류도 넘는 젓가락은 각각 다른 나무로 만들어 졌고, 젓가락 끝에 나름의 장식으로 그 다름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떤 나무가 좋은 지 몰라, 그중 제일 많은 젓가락에 재료로 쓰인 나무를 택하고, 너무 화려한 장식 대신 끝에 장미 꽃을 새겨 넣은 것으로 몇 개 골랐다. 탄탄하고 단정한 상자 포장은 트렁크 구석에 꾸겨 가져오는 다른 기념품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 소중한 맘을 전해보려 오랜만의 좋은 사람들과의 자리에 평범한 젓가락 대신, 정성들여 고른 젓가락을 놓았는데, 그걸 잃은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오늘 식탁에 그 젓가락을 기억해 올려놓은 내 마음이 전해졌기를 바랄 뿐이다.
<박명혜(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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