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로 유명한 파스칼이 죽은 후 친구들이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의 양복 가슴 안쪽에 종이 한 장이 촘촘히 꿰매어져 있는 메모리알을 발견했다. 분명 그것은 파스칼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그의 가슴에 꼭 닿을 수 있도록 양복 안쪽으로 넣어 촘촘히 꿰매어 보관했다. ‘1654. 11. 23. 10-12.’ 라고 선명하게 적인 날자와 시간 아래 다음의 글이 나온다.
‘불, 불, 불.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확신, 확신, 확신.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제임스 페니베이커의 ‘the Secret Life of Pronouns’ 중에서
파스칼은 경건한 누이의 영향을 받아 젊어서 회심했다. 하지만 그는 워낙 유명해서 오랫동안 상류층 사교계를 드나드는 세속의 삶에 탐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에 성령의 급작스런 임재를 체험했고 이후부터 그의 언어는 바뀌어 하나님을 꼭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파스칼의 제 2의 회심 사건이다. 파스칼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몽테뉴와 데카르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이 믿는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을 서로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소유대명사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경외했다.
이기주의자 야곱의 변화도 소유대명사의 사용과 무관하지 않다. 장자권을 빼앗긴 일로 에서가 불같이 분노하자 야곱은 황급히 유랑의 길을 떠났고 중간에 벧엘에서 노숙했다. 그때 홀연히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너의 아비 이삭의 하나님이다.’ 야곱은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고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야곱은 그때까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친밀하게 부르지 않았다.
남북 전쟁의 아픔을 치유한 것으로 유명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보라. 소유대명사로 가득하다. 마틴 루터는 말했다. “많은 사람이 소유대명사를 잘 사용할 줄 몰라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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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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