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1960년대 강속구 투수…테드 윌리엄스 “내가 본 가장 빠른 공”
최근 별세한 스티븐 댈코우스키 [AP=연합뉴스]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진 것으로 알려진 전 마이너리거 스티븐 댈코우스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AP통신 등 미국 매체들은 24일 "댈코우스키는 지난 20일 미국 뉴브리튼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댈코우스키는 현역 시절이던 1950~1960년대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지만, 미국 주요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유명해졌다.
주변의 평가도 엄청났다.
메이저리그의 전설 테드 윌리엄스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빠른 공"이라고 평가했고, 배터리를 이뤘던 칼 립켄 시니어는 "보호 패드 3개 정도는 껴야 받을 수 있는 공"이라고 말했다.
당시 몇몇 야구 전문가는 댈코우스키가 시속 177∼185㎞의 공을 던진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가 시속 200㎞의 공을 던졌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속은 미국 전역에서 화제를 모았지만, 실제 구속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엔 정확한 구속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댈코우스키는 빠른 공을 던졌지만, 최악의 제구력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하고 은퇴했다.
그는 프로 첫해인 195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경기 당 17.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지만, 볼넷을 18.7개나 내줬다.
이후 1965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46승 80패 탈삼진 1천324개, 볼넷 1천236개, 폭투 145개를 기록한 뒤 은퇴했다.
댈코우스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1988년 개봉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9번째 남자'(Bull Durham)는 델코우스키의 스토리가 소재로 쓰였다.
한편 댈코우스키는 1994년 아내와 사별한 뒤 힘든 삶을 살았다. 알코올성 치매에 걸린 댈코우스키는 수십 년의 세월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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