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시리즈 명사들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
▶ (2) 홍명기 ‘M&L 홍 재단’ (구 밝은미래재단) 이사장

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전의 상흔이 아직 곳곳에 남았던 지난 1954년 미국에 유학와서 1959년 UCLA 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당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결국 마지막 학기에 등록금 200달러가 부족해 등록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이때 UCLA에서 영어를 가르친 람라스 교수에게 형편을 이야기했더니 자신의 예금을 깨고 200달러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줘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1959년 UCLA 화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페인트 전문기업 웨스턴 스테이트 라커에 입사 후 람라스 교수를 찾아가 200달러를 되돌려주었다. 그러나 람라스 교수는 “이 돈은 내가 당신에게 준 선물이니 나에게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결코 부자라고 할 수 없는 람라스 교수가 제자의 학업을 이어가게 하려고 자신의 저축을 깨서 준 돈의 의미는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날의 감동과 깨달음이 미국에서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더 큰 성취를 이루어가는 계기가 됐다.
1963년 비행기 외장 코팅 재료를 개발하는 회사에 취업했다. 1967년 종합코팅 재료를 생산하는 월리타커로 옮겨 20년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자동차 도료, 수지 등을 제조하고 연구하는 일을 했다. 연구부터 개발까지 거의 모든 업무를 도맡다시피 했다. 항상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코팅 재료를 개발하겠다는 연구 마인드로 일했다.
그러나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유리천장’이 있음을 실감했다.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며 회사에 큰돈을 벌게 해주었지만 번번이 승진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의 권유로 1986년 수중에 있는 2만 달러를 들고 특수 페인트 생산업체인 ‘듀라코트’를 창업했다.
또 다른 과감한 도전을 감행한 것이 남들은 안정을 추구할 나이인 51세의 나이였다. 컨테이너에서 하루 3시간씩 자면서 열정을 불태운 결과 산업, 건축 철강용 특수도료를 개발했다. 그 당시 모든 이들이 6개월 안에 회사가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겪었다. 이전 회사에서 연구하던 것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야 했고, 연구 개발과 판로 개척 등 어려움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듀라코트의 신제품 샘플에 만족한 스미토모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혁신 제품을 출시하면서 스미토모에서 25년 계약을 체결해서 이를 수용했는데, 이보다 물량이 7배 큰 BHP사에서 그 제품을 독점으로 공급해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스미토모와 독점 계약을 체결해 그 제품을 다시는 만들 수 없고, BHP에서 스미토모의 허락을 받으면 고려해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신제품이 꼭 필요했던 BHP에서 나의 조언을 수용해 스미토모 측에 “자신들도 신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제안했다. 스미토모 측으로서는 자신들보다 훨씬 규모가 큰 거래처의 요구를 거절하고 신뢰를 지킨 나의 태도에 감동해 이후 스미토모는 듀라코트와 영원한 사업동반자가 되었다.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신뢰 관계를 이어가면 영원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듀라코트는 이후 건축용 철근 부식을 막는 세라나멜을 비롯해 수백 종류의 산업·건축용 특수 페인트를 제조하고, 미국 내 시장점유율 1위, 연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결국 인내심을 갖고 한 우물을 파다보니까 좋은 결실을 얻은 것 같다.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직업은 무엇이나 좋다. 제1인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우물을 파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물을 판다는 것은 무언가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며 자신의 진짜 능력은 마냥 한 곳에 오래 머물러있다고만 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그 분야를 공부하고 알아봄으로써 무엇을 알게 됐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을 가질 수 있게 됐는지 등을 자각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우물을 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2년 아메리칸 케미컬 소사이어티(ACS)로부터 한인 최초로 50년 근속상을 받았는데 세계 굴지의 화학회사들과 경쟁하는 특수 공업용 도료연구와 생산에 50년 동안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난치병 연구 및 후진 양성을 위해 모교인 UCLA에 200만 달러, 라시에라대의 연구동 설립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유능한 인재가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훗날 더 많은 도움과 영향력을 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기부금을 냈다.
지난 2016년 듀라코트사를 매각한 뒤 재단을 통해 차세대 및 커뮤니티를 위해 거액의 기부를 이어오고 있지만 가장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지난 6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미국 최고의 도료 연구개발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는 점이다. 특히 인체에 해가 없는 항산화, 항마모, 항내구성의 친건강제품 개발로 지구 자원을 보호하는 일에 주력해왔다.
미래에도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사람은 전문가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얕은 우물만 많이 파려고 하지 말고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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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빌 언덕이 없다보니 여기저기 우물파다가 죽어가는 삶. 그리고 이에 지친 우리 모두에게 여기저기 우물판다고 딴지 거는 자 없는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