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지역한인교회협의회 정기총회가 지난 26일 열렸다. 총회에 참석한 100여명의 대의원들은 대부분 목회자였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절차가 무사히 끝나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이날 총회는 교협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기록으로 남게 됐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제로 설교에 나선 이원희 원로목사는 “목사라는 이름으로 성도를 등쳐먹는 거짓목사가 판을 치고 있다”고 개탄하며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설교의 배경에는 이미 총회 전부터 불거진 재정문제와 회장 입후보 자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를 맡아 재정문제를 지적한 한 목사는 “파렴치한 감사”가 됐고 지난 1년간 수고한 회장은 “사기꾼”이 됐다. 회장 후보로 나선 목사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가 됐으며 부회장에 출마한 후보들은 “욕심에 눈 먼 목사”로 비난을 받게 됐다.
각 교회에서는 존경받는 목사님들이지만 이 날 만큼은 비난과 폭로를 서슴지 않는 용사가 되어 서로 물어뜯기에 바빴다. 고성과 막말이 오가며 “목사가 목사다워야지” “양심도 없이 거짓말을 한다” “타락한 목사,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너는 깨끗하냐” 등 차마 글로 옮기기 부끄러울 만큼 시험에 들게 하는 목회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러나 애써 감추려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일뿐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년 이상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원희 목사는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목회가 아닌 신분유지를 위해 학교에 등록했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들이 모두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됐더라”며 “목사 안수는 받았는데 목회는 하지 않고 세상 일만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재정문제를 지적한 한 목사는 이번 기회에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사명감으로 총대를 멨고 회장 입후보 자격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제시한 목사 또한 교협을 바로세우기 위한 남다른 사명감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이런 사명감도 근본적인 해결 없이 서로에 대한 손가락질만 난무했을뿐 결국 어느 편이 많은가, ‘편 가르기’만 확인시켜 주었다. 심지어 한 원로목사는 그간의 교협회장 선거와 관련된 부끄러운 역사를 언급하며 “내가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진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에 시작된 교협총회는 점심도 거른 채 오후 4시까지 장장 5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매년 총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목소리를 내는 사람 또한 매번 같은 사람들이다. 이에 청중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너무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안건도, 가장 중요한 임원선거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만고의 진리에 따라 끼니도 거르고 인내심을 발휘하던 참석자들의 한마디에 급하게 마무리 될 뿐이었다. “밥 먹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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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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