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복 교협회장 (사진)
“동포사회를 살리자면 교협이 움직여야 한다. 모든 행사를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면 한인식당을 비롯 한인비즈니스도 산다. 대면예배, 대면세미나 등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고 동포사회를 교협이 끌어안겠다. 기존 성도에게는 만족을, 동포사회에는 소망을 주겠다. ”는 김희복 회장은 그동안 뉴욕목사회 총무, 교협 총무 2번, 부회장, 안내분과위원장 등의 봉사를 하면서 18년간 준비해왔다.
“새벽기도에서 교협을 위해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너부터 회개하라는 감동의 말씀에 우상과 물질욕, 권세욕을 버리고 나만 섬기면 내가 다시 일어나 미국도 한국도 뉴욕교계도 살릴 것이라는 감동 감화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한다.
“91년부터 지금까지 목회활동 30년이다.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될 것이다.”는 그는 전도와 선교에 포커스를 맞춘 사역 일을 즐겁게 해오고 있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에서 7남2녀 중 여덟째로 태어난 그는 큰형님 손을 잡고 교회에 처음 나갔다. 중2학년이던 16살에 찬송을 부르던 순간 하나님이 찾아왔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대구 자전거공장에서 일하느라 잠시 교회를 쉬었다가 다시 교회에 나갔다. 교육능력을 인정받아 전도사가 되었고 19세된 어느 날, 성령이 임해 통곡을 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찾아온 것.
30살인 1991년 10월14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부산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33세에 하나님이 또 한번 찾아왔고 전도와 선교를 향한 가슴이 펄펄 끊었다. 중국, 일본, 캄보디아, 아프리카, 필리핀에 단기선교를 나가다가 중국 선교(1996년~2002년)에 올인 했다.
2002년 7월 미국에 왔고 2003년 12월 퀸즈 엘머스트 공원에서 다민족 홈리스 40여명에게 거리 전도를 시작했다. 한인 홈리스로 대상을 넓히며 더나눔의 하우스(박성원 목사)의 시초가 되기도.
다민족이 모여사는 우드사이드 지역에서 뉴욕주찬양교회 담임목사를 하며 거리전도를 한 지 18년이다. 8년 전부터는 맨하탄 지역으로 옮겨 20여명 교인들이 매주 토요일 오전11시~오후2시까지 자기 마이크를 하나씩 들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외치고 기도하고 찬양한다. 2016~2019년에는 김목사의 목이 늘 쉬어있었다. 2년3개월동안 전도자, 두나미스신학생들과 미 50개주를 누비며 다민족 전도사역에 나섰던 것.
대신대학교, 대구계명대학교대학원, 총회신학대학원, 캐나다 크리스찬칼리지를 졸업한 김희복 회장은 수년간 두나미스신학대학교 학장이다. 도루가의 집 뉴욕센터 이사장이며 사모 배영숙 목사와 슬하에 1남2녀를 두었다.
“함께 기도하고 동참해 달라. 회장의 일이 아니다, 주님의 일이다, 세상에 방황하는 자들을 살리는 교협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김회장은 “회개하면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산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만나자.”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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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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