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나에게 참으로 감개무량한 해다. 기다리고 기다려 만 80세 생일을 맞이했다.
요즘 100세 시대라 하지만 8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음은 큰 축복이다. 아들이 베풀어준 생일파티에 동갑 말띠 친구들을 특별히 초청하여 행복한 시간을 가진 후 집에 돌아와 지난날 사진들을 보면서 80년을 회상해봤다.
1942년 5월 29일 서울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출생한 후 농구 코치이며 체육교사이셨던 아버지의 교직을 따라 숭실, 고창을 거쳐 전주농업고등학교 훈육주임으로 계실 때 6.25를 맞이해 산속으로 피난을 갔다. 그 후 군산고등학교에서 6년을 교직에 계시는 동안 나는 군산초등학교, 군산여중을 거쳐 1957년 내 고향 서울로 올라와 을지로 5가에 있었던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무남독녀로 어린이들을 좋아해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안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여 학습 세례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그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눠야한다는 사랑 실천을 배우면서 꿈을 키워 나갔다.
1961년 숙명여대 영문과에 입학, ‘정숙, 현명, 정대’란 교훈을 가슴에 품고 정숙하고 현명한 여성이 되어 올바른 큰 꿈을 실천해 보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61년 전 숙명여대 신입생으로 대한적십지사 청년봉사회에서 스카웃 지도자 훈련을 받고 있을 때 맹인 중학생 교복을 입은 강영우씨를 돕는 프로젝트에 동참해 그의 누나 역할을 하면서 나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일반학생을 지도하는 교사가 아니라 시각장애 학생을 지도하고 싶어졌고 그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어 1967-68년 1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재활교육청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강영우씨는 연세대 1학년생으로 나의 미국 연수교육을 함께 나누면서 장차 미국 유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부부가 되었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최초 맹인 박사 탄생, 부시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국가장애인 정책자문위원이 되었다. 또 하나님의 축복 중에 행복한 가정에서 두 아들이 잘 성장하여 아버지의 미국 이민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이 소천한지 10년이 지났고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생 노년을 아들집에서 가까운 콘도에서 혼자 산다. 가까운 이웃에는 운전할 수 있어 메시야 평생교육원에서 크로마하프 초급반을 지도하면서 씩씩하게 탁구도 치고 주일을 꼬박 지키며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려고 한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의 장지도 남편과 어머니 묘 옆에 준비되어 있어 염려할 것은 없는데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면 큰 손녀가 이번 9월에 예일 대학에 입학했고 막내가 대학입학하려면 아직 8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하는 욕심을 품어본다. 그리고 오늘까지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갚아야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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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옥 / 강영우 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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