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
내가 비록 어려 보여도 자유당 정권 아래서 태어나 광복 20년으로 드라마를 입문했으니, 성우 구민이 재연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이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비율빈이라 불리던 필리핀이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이던 시절.
그 행보가 역사적 논쟁의 대상인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듣는 입장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하여튼 그때는 대단한 금언인 양 이 사람 저 사람 참 자주 들먹였다. 이 말의 앞뒤로 조선인은 모래와 같아서 뭉치지를 못한다는 자조가 부록처럼 붙어서.
이 박사의 이 18번은 물론 자기 노래가 아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에서는 이순신 장군이냐 이승만 대통령 말이냐 따지던데 이 말은 뿌리가 더 깊다. 원전을 이솝우화까지 거슬러 찾기도 하던데 미국에서 공부한 그의 이력상 미국 역사에서 번안한 것으로 본다.
Join, or Die
1754년 뉴욕 알바니에서 식민지 대표들을 규합하며 벤자민 프랭클린이 내세운 구호다. 그가 발행하던 가제트 지에 삽화로 게재했다. 여덟 토막난 뱀 몸통 마디마디에 뉴잉글랜드, 뉴욕, 뉴저지, 펜실베니아, 메릴랜드, 버지니아, 노스 캐롤라이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약자가 보인다.
각자 따로 놀던 식민지들이 하나로 단결하지 않으면 인디언과 프랑스의 연합 세력에 맞서지 못한다는 호소였다. 신대륙에서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고, 구대륙에서는 7년 전쟁(1754-1763)으로 불린다.
이 구호는 십년 뒤인 1765년 본국 영국의 인지세 도입에 저항하며 독자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한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 리바이벌 됐다. 더 크게 목청 높여. 이번엔 독립전쟁이다.
프랭클린에 의해 신생 아메리카를 상징한 뱀의 이미지는 독립전쟁 중에 온전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1775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부대를 이끌던 크리스토퍼 개즈던이 해병대 깃발을 고안했다. 이번에는 몸통이 온전하게 꽈리를 튼 방울뱀에 ‘DONT TREAD ON ME’ , 함부로 밟았다가는 각오하라는 경고를 달았다. 이 개즈던 깃발은 요즘 들어 극우 과격파들이 주로 드는 터라 보기에 좀 불편할 수 있다.
여하튼 프랭클린의 구호를 미국사 책에서 처음 봤을 때 뭉치다가 내가 생각한 ‘유나이트(unite)’가 아니고 ‘조인(join)’이어서 눈길이 갔다. 조인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알게 된 단어가 있다. 조이너.
‘Plane’ the joiner. 식민지 시절의 전단에 나온 문구인데 앞뒤 맥락에서 ‘무당의 요령’처럼 직업에 관한 것임을 넘겨짚을 수 있었다. ‘Shuttle’ the weaver, 직조공의 북틀, ‘Mortar’ the mason, 석공의 회반죽.
쉬운 단어 같은데… 조이너…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정비공의 모토도 아니고… 이럴 때는 겸허히 사전을 찾는 게 지름길이다.
join, 끼워맞추다, 뭘? 나무조각들을. 요철을 파고 돋우어서 꽈악 맞물리는 가구 조립. 문짝, 창호, 벽난로 장식까지. 그러니까 조이너는 목수, 목공인 것이다.
목수야 영어로 모르는 사람 별로 없다. 탑 오브 더 월드,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 카펜터스 노래가 줄줄 떠오르지 않느냐. 그러니까 카펜터(Carpenter)는 나무로 집을 짓는 대목, 조이너는 소목이다.
목재를 다루는 직업에서 유래한 또다른 이름에는 쿠퍼(Cooper)가 있다. 나무통, 배럴(barrel)을 만드는 사람. 하이눈의 게리 쿠퍼, 요즘 인기인 브래들리 쿠퍼의 쿠퍼 역시 스미스, 베이커, 테일러처럼 직업에서 나온 성이다.
아차, 조이너의 연장 플레인(plane)을 빼먹었네. 비행기 말고 목재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대패가 플레인이다. 옛날 분들이 흔치 않은 성씨 감(甘)씨를 일러 대패 감씨라던 농담이 생각난다. 수학시간에 x축, y축 하며 배우는 평면도 그렇게 코오디네이트 플레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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