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뒤쫓아가 총으로 쏴서 사망케 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그 때마다 총격이 과잉 총격이었느냐, 아니면 정당 방위였느냐가 항상 쟁점이 되곤 한다. 또는 백인 경찰이 흑인 남성의 손이 재킷 안쪽으로 향하면 쏴 죽이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경찰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라는 미국 특유의 정당방위 원칙이다.
몇 년 전 위스콘신주 케노샤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카일 리튼하우스 살인재판도 정당방위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백인 피고인 리튼하우스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인종차별 반대 시위 현장에서 백인 자경단원들과 반자동소총을 들고 순찰 활동을 벌이던 중 자신에게 돌진해오던 2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재판 결과는 정당방위로 평결돼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런 때마다 미국은 정당방위냐 아니냐를 놓고 늘 시끄럽다.
얼마 전에도 뉴욕의 지하철에 타고 있던 24세의 해병대 출신 백인 승객이 소란을 피우던 흑인 남성의 목을 조른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숨을 못 쉬던 흑인이 죽었다는 점이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던 흑인 남성 조던 닐리는 다른 승객들에게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던 중이었다. 이를 본 백인 승객 다니엘 페니와 2명의 승객이 그를 제압했는데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니 인종차별 살인사건이라는 프레임이 걸려버렸다.
뉴욕시 지하철에서 흑인 정신질환자가 다른 승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참다못한 승객들이 정당방위의 헤드록을 걸어버렸다. 그런데 그의 행위가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어버렸다면 그야말로 아무리 닐리가 잘못했더라도 그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시 지하철은 미국에서 가장 분주한 통근라인이다. 다양한 노선을 24시간 운행하는데, 퀸즈 7번 트레인은 물론, 브롱스나 브루클린, JFK에서 맨해튼까지 1,000만 뉴욕시민들을 수시로 나르는 발이다.
그런데 최근 야간 시간에 승객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하거나 칼을 휘둘러 상해를 입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때 정당방위를 위한 대응 폭력 사건이 덜 일어나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다니엘 해병대원의 헤드록 사건도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정당방위였는가, 그것이 이슈가 될 것이다.
얼마 전 월스트릿저널(WSJ)도 “미 정당방위 살인이 10년새 85%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바로 30년 전에 유사한 흑백 정당방위 사건이 있었다. 지하철 승객인 버나드 게츠(당시 48세)의 정당방위 총격사건은 1983년 12월22일 뉴욕 맨해튼의 한 지하철 안에서 일어났다. 당시 10대였던 흑인남성 4명이 돈을 요구하며 다가오자 이들에게 권총을 쏜 것이다.
뉴욕은 버나드의 정당방위 총격을 두고 논쟁에 휩싸였다. 백인 남성의 인종차별 범죄였을까. 넷플릭스는 ‘미디어 재판’이라는 타이틀과 ‘지하철 자경단’이라는 부제로 그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까지 했다. 버나드는 불법 총기 소유 혐의로만 처벌을 받고, 살인혐의는 무죄로 풀려났다. 다만, 민사소송에서 거액의 배상을 물리는 판결이 나와 유가족들은 큰 보상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다니엘 페니 전직 해병대원 사건은 40년만에 탄생한 흑인 뉴욕시장 에릭 아담스에게 큰 도전을 안겨줄 것이다. 정말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당시에도 버나드 게츠 사건으로 흑백 인종차별 이슈가 거대 담론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BLACK LIVES MATTER’에 또 한 번 불을 뜨겁게 지필 것 같다.
흑백 분쟁이 생기면 항상 손해를 입는 쪽은 누구인가. 고래싸움 속에 새우가 된 한인들이나 동양인들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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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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