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 한 모퉁이에 멋지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는데 연못도 있고 그 위로는 아름드리 늘어진 오래된 버드나무가 있었다. 늙고 오래된 수양버들은 한여름이면 풍성하고 탐스런 가지들이 그늘을 만들어 꼬마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우리는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붙들고 이리저리 잡아당기고 그네도 타고 해도 꺾이는 법이 없이 가만히 있어주었다.
우리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버드나무는 우리를 안아주고 놀이터가 되어주면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버드나무는 어머니와도 같았다. 어릴 때 이 버드나무에게서 받은 인상과 교훈은 이 나이가 되도록 잊히지가 않는다. 매일 그 버드나무를 보면서 나도 성인이 되면 저 버드나무와 같이 유연하고 느긋하고 온화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버드나무와는 반대의 성질을 가진 나무가 대나무이다. 대나무 숲에 가보면 그 나무들의 자태나 키는 나를 압도하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주구창창 위로만 뻗어가고 절대로 가지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땅속에서 죽순이 나오면서 또 다시 하늘 위로 뻗어 나간다.
대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어찌 그리도 기강이 대단하고 유아독존적인지, 자신감으로 자기를 꽁꽁 묶어놓은 것 같다. 속이 텅 빈 대나무이지만 그 껍질은 여간해서 깨어지지 않으며 한번 딱하고 쪼개지면 재생불능의 나무가 된다. 대나무의 성질이 그러하므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아주 요긴한 살림살이 재료가 된다.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 가구, 침대, 물받이 등이 있고 그 옛날에는 뾰족한 무기로도 쓰였고 대나무의 죽순은 귀한 먹거리이다.
대나무의 올곧은 절개와 품위는 사군자에도 빠지지 않으며 우리들이 사용하는 숯의 원료가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우리 인류에게 많은 것을 주며 군락을 이루고 산다.
내가 일본 여행에서 보았던 대나무 숲은 하늘이 보이지 않고 어둑어둑 했으며 대나무의 키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높은 삼층건물 높이의 키였으며 거의 모든 나무들이 연두색을 띠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이 대나무 숲을 잘 보존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옛날 선비의 기개를 말할 때 대쪽 같은 성격이니 절개를 지키는 이를 두고 대쪽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인간관계에서 서로 타협하고 상대를 수긍하고 필요하다면 양보하고 조화를 이루는 미덕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러한 길을 잘 걸어가면 지혜롭다거나 현명한 이라고 말한다.
대나무와 버드나무의 성질을 비교하면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지만 인간관계에서 보자면 버드나무 쪽을 택하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로 충돌하지 않는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자존심과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대나무 같이 위로만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그날은 친정을 떠나는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날 부르시더니 “얘야, 대나무보다는 버드나무가 나으니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만큼 이 말씀대로 살아왔는지 의문이며 부끄러운 나 자신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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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자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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