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사후 자민당 집단지도체제 핵심들 비자금 의혹 연루돼 검찰 조사 앞둬
▶ 관방·경제산업장관 등 개각 불가피…당 최대 계파 구심점 잃고 몰락 위기, 야 ‘중의원 해산’ 목소리 커질 수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로이터]
일본 집권 자민당 내 최대 계파인 아베파(정식 명칭 ‘세이와정책연구회’)가 벼랑끝에 몰렸다. 지난해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 후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한 핵심 인사 5명이 모두 최근 불거진 비자금 의혹에 연루돼 각료나 자민당 간부 등 요직 박탈은 물론,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될 상황에 처한 탓이다. 가장 많은 의원 수를 등에 업고 총리 배출 때마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아베파가 존속 위기에 몰리면서 파장은 이제 일본 정치권 전체로 번지고 있다.
1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아베파 소속으로 정부 각료 또는 자민당 간부직을 맡고 있는 이른바 ‘5인방’ 전원을 경질하기로 했다. 대상은 정부 대변인이자 내각 2인자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을 비롯해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장관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정조회장 △다카기 쓰요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세코 히로시게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이다.
이들 5명은 아베파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각자에게 할당된 분량 이상으로 기업이나 단체에 ‘파티권’을 판매해 돈을 걷은 뒤, 할당량 초과분 금액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비자금으로 활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마쓰노 장관과 니시무라 장관은 아베파 전 사무총장으로서 이런 관행을 묵인했을 뿐 아니라, 직접 가담까지 한 것으로 도쿄지검 특수부는 보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임시국회 폐회일인 13일 이후, 검찰이 이들을 일제히 조사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베파 인사들을 대거 경질하면 소규모 개각 수준의 인사가 불가피해진다. 기시다 총리는 9일 밤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와 만나 인사 규모, 후임 후보 등에 대해 상의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일각에선 후임 관방장관에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장관 등 스가 요시히데 정권 당시 주요 각료를 맡았던 인사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스가 전 총리와 가까운 인물을 임명함으로써 자민당 계파 정치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각 때마다 아베파, 아소파, 모테기파 등 다수 계파에 요직을 배분했던 기시다 총리가 임명 책임을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야당의 ‘중의원 해산’ 요구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현지 언론에선 1988년 총리 사임까지 부른 일본 최대 정치자금 스캔들인 ‘리크루트 사태’를 언급하며 이번 사태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 아베파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한 5인방이 모두 요직을 잃고 줄줄이 기소된다면 구심점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케이신문은 “검찰 수사 진전에 따라 아베파가 분열할 수 있다”는 한 자민당 간부의 발언을 전했다.
현재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도 자민당 계파 해산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고,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역시 1주일 전 “아베파는 해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년간 총리 4명을 배출하는 등 사실상 일본 정치권을 좌지우지해 왔던 아베파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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