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돌아갈 것이다.’
이 문장은 2023년 노벨문학상 작가인 욘 포세의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에 나오는 한문장이다. 표현하기 어려운 내면의 깊은 감정을 자극하는 문체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130여페이지 남짓의 짧지만 긴 여운의 소설은 어부 요한네스의 탄생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아침과 저녁에 빗대어 썼다.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날 욜라이가 한 말의 일부이다. 한 아이가 출생하여 성장하고 어부가 된다. 그리고 아내와 자식과의 시간을 누리고 노인이 되었다. 아내를 먼저 보낸 후 그 상실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삶과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가 경험하게 될 모습일 것이다.
어느새 2023년 12월의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솔직히 당황스러울 정도로 시간이 빠르다.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팬데믹을 지나며 어쩌면 우린 시간을 쉽고 가볍게 흘러보내는 방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체득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2023년이라는 숫자가 아직 채 손에 익숙하지 않아 체크를 쓸 때, 2022년이라고 썼다가 황급히 지우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2022년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2023년이라고 고쳐 말하기 일쑤인데…… 2024년을 맞아야 한다니……
뭔가 시간이라는 개념에 큰 오차나 오류가 생긴 것이 아닌지 지난 시간을 다시 헤아려본다. 혹시나 2, 4, 6….으로 짝수 월로 살아온 것이 아닌지. 하지만 당연히 시간은 숫자의 순서대로 터벅터벅 자신의 속도로 지나 온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문장처럼 우리 모두 역시 각각의 때가 되면 거기에 맞는 장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특별히 애를 쓰거나 악다구를 부릴 일도 없고 또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우린 잘알고 있다.
어쩌면 나이를 먹고 그 무게를 몸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그런 이치를 받아들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과정인지 모르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상은 참 빨리 발전하고 그 발전은 우릴 쉬 놓아주지 않게 되었다. 하여 노쇠한 저녁의 시간도 그리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더 오래 준비하고 더 오래 바라보며 더 오래 움직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저녁의 고요한 시간은 그리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아주 느리고 지진한 풍경을 선보일 것이다. 이 2023년이 가기 전에 각자에게 풍경같은 하나의 시간을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 공원의 작은 벤치에 앉아 짧은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시간을….그리고 고개를 들면 처음의 시간과 다른 또 다른 시간의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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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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