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코비드 팬데믹으로 마스크에 가려져 보지 못했는데, 미국사람들은 잘 웃는다. 스쳐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웃는 얼굴,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게 신기해서 미국문화의 한 특징으로 꼽는다.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 사진을 찍어보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동포 신문사에서 일하던 시절 얼굴사진을 숱하게 찍었다. 여기서 자란 2세들은 렌즈 앞에서 미소가 자연스럽다. 반면에 1세들은 카메라만 대면 얼어붙는다. 늘 화가 나 있다고 오해를 받는 한인 상인들. 나는 몹시 드문 예외라는데, 반은 속 편한 천성이고 반은 사진 찍으며 시범을 보이다가 몸에 붙었다고 하겠다.
미국인들의 미소에 관한 설명은 구구하다. 누군가는 어느 놈이 총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백기 대신 보이는 억지웃음이라던데 그건 다소 무리한 해석일 것이다. 이민자들의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닐까. 말이 서로 사맛디 아니하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메시지,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정도? 총기가 흔한 이 사회에서 나는 당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미소는 사회의 안전장치 기능을 하는 걸까.
같은 서구문화권인 유럽에서는 어떠한지, 이 몸이 가보지를 못해 모르겠다. 월마트가 독일에 진출해서는 별 재미를 못 보고 결국 철수했는데 여러 시행착오 중에 하나가 손님들에게 미소로 대하라는 캐시어 교육이었다고 한다. 미국식 환대의 환한 미소에 자기를 좋아하는 줄 오인하고 가슴 설렜던 한스, 맞장구 치는 수작이 먹히지 않자 무안하고 괘씸함에 발길을 끊었… 농담이고 하여튼 그 차이가 단일민족 사회냐, 다인종사회냐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은 겉은 부드러워 쉽게 가까워지나 그 속에는 단단한 씨를 감추고 있는 ‘복숭아 문화’이고 독일은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미소도 짓지 않아 무례하다 싶을 정도이지만 한번 속을 열어보면 우정이 오래가는 ‘코코넛 문화’라고 비유를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중에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단일민족 사회에서 사내의 미소란 1)술 취했나 2)미쳤나 3)바보인가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기 예사다. 물론 여기에서도 말은 못하고 웃기만 하는 이민자들이 바보 취급을 당한다. 때로는 비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건 남들 얘기가 아니고 바로 내 얘기다. 영어를 잘 못하니 따져야 할 때 제대로 못 따지고 버벅거린다. 영어가 깡패고 그 깡패 앞에서 나는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한신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비실비실 웃는 이민자들을 순진한 시골뜨기로 보기 쉽다. 알고보면 이민자들만한 빠꼼이가 없는데. 특히 불체자들. 과테말라에서 멕시코 거쳐 미국 국경 넘어 오려면 밀입국 알선 코요테들에게 건네야 하는 돈이 만 불을 훌쩍 넘는다. 그 돈이 어디 있나. 온 가족이, 온 마을이 겨우겨우 마련하는 거액의 빚이다. 미국 가서 뭘해서든 돈 벌어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아무나 보낼 수 있겠나. 나름 그 동네 에이스를 선발하는 것이다.
그 에이스들 상당수가 코로나 실업대란에 가장 먼저 제쳐진 대상이었을 것이다.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투명인간들.
그리 멀지도 않은 팬데믹 기간을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마스크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 과연 미소였을까. 사람 마주치는 것이 두려운 공포, 또는 혐오의 찡그림 아니었을까.
마스크를 벗고 웃는 얼굴은 돌아왔지만 손을 잡고 흔드는 악수는 이전처럼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도 선뜻 손을 내밀기가 그렇다. 팬데믹 동안 배운 팔꿈치 인사가 피차 편한 건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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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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