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미국에서는 디스토피아 영화 ‘내전(civil war)’이 개봉돼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5,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 1억2,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3선의 권위주의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정부에 대항해 19개 주가 분리 독립을 시도하면서 남북전쟁보다 더 격렬한 제2의 내전이 발발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극과 극인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가 동맹을 맺고 서부군 반란을 주도한다.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한 허구적 설정이다. 하지만 흥행몰이 자체가 이념적·문화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 정가에서 금기어인 ‘내전’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조지 랭 조지아 상원의원은 22일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내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5월 마리스트대의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7%가 “내 인생에 또 다른 내전이 일어날 것 같다”고 밝혔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로 다음 해 1월 사상 초유의 의사당 난입 사태가 발생했을 때 친트럼프 시위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다 나른 문구도 ‘#내전(#civilwar)’이었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레이 달리오는 지난 500년 동안 주요 제국들은 6단계의 빅사이클을 거쳤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새로운 질서 수립-자원 분배 체계와 관료 제도 수립-평화와 번영의 시대-과대 부채 및 빈부 격차 확대’를 거쳐 ‘재정 악화와 갈등 심화’라는 5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마지막 단계인 내전으로 넘어갈 확률은 35~40% 정도로 봤다.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팽배, 계급 투쟁 심화, 폭력 시위 빈발 등이 그 징후라는 것이다. 한국도 정치권의 갈라 치기 행태 때문에 국민들 간 심리적 내전이 격화하고 있다. 분열과 대결을 더 이상 부추기지 말고 지속 가능한 나라를 위해 국민 통합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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