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샌들러가 나오는 ‘언컷 잼스(Uncut Gems)’(2019년)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의 류승완, 류승범처럼 유명한 조쉬와 베니 사프디에 형제가 감독을 맡아 주목 받은 작품이다. 시종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영화, 그래도 권할 만한다. 샌들러가 뉴욕의 유태인 보석상으로 나오고 보스턴 셀틱스의 케빈 가넷 선수가 본인 역으로 출연한다. 오팔 원석과 농구가 엉키는 가운데 눈에 들어온 한 장면, 샌들러가 묻는다. NBA 첫 점수를 누가 냈는지 아느냐?
정답은 오시 쉑트만, 뉴욕 닉스 소속의 유대인 선수다. NBA의 전신 BAA의 첫 경기, 1946년 11월 1일, 토론토 원정에서다. 시합도 이겼다.
키다리 농구판에 유대인이라, 다들 의아해 하겠다. 유태계 배우로 잘 알려진 벤 스틸러도 종종 작은 키로 자학개그를 하지 않나. 단신은 대물림인데 버스기사였던 아버지가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깔고 운전을 했다나.
그런 농담들이 무색하게 미국 농구의 초창기는 유대인 젊은이들의 독무대였다. 선수들은 물론 지도자, 구단 관계자들에 유대계가 두드러졌다. 뉴욕 이민사에서 흥미롭게 읽은 대목이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주연의 아담 샌들러, 사프디에 형제감독 모두 유태인이고 농구광들이다. 이곳 워싱턴 DC의 NBA 구단인 워저즈의 옛 이름이 총알처럼 빠르다는 불리츠였고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총격으로 피살되자 당시 유태계 구단주 에이브 폴린이 그 충격에 개명의 결심을 굳혔다는 도시전설을 올드타이머들은 기억할 것이다. 라빈 피살보다는 그즈음 디씨에 만연했던 총기범죄가 결정의 배경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이 지역 한인들에게 트라우마로 새겨진 역사가 있다. 93년 그 음산했던 가을, 한인안전대책위 발족, 방범 비디오 제작 등등이 떠오른다.
농구는 미국의 프로스포츠 가운데 진화가 아니고 발명으로 태어난 유일한 종목이다. 1891년 캐나다인 체육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겨울철 실내 체력단련 목적으로 고안해 냈다는 출생증명서가 있다.
YMCA와 군부대 위주로 퍼져나간 이 미국적인 스포츠가 20세기 초반 유대계 이민가정의 청소년들을 매혹시킨 데에는 이들이 살던 뉴욕 빈민가라는 환경이 한몫 했다. 좁은 공간, 별다른 시설 없이도 가능했기에. 뒷날 농구를 주름잡게 된 흑인 청소년들과 그 출발점이 다르지 않다.
평균적으로 키가 큰 편이 아닌 유대계가 뉴욕, 필라 등 대도시 학교 농구팀의 주역으로 뛸 수 있었던 것은 당시만 해도 키의 농구가 아니고 민첩함의 농구였기 때문이다. 사회의 밑바닥, 게토에서 살아가는 이민 2세들에게 농구는 답답하고 막막한 일상을 벗어나는 해방의 출구였다. 코트에서 억눌린 에너지를 터뜨렸다.
“이 게임에는 긴장, 책략, 몸 속임, 능란한 닷징, 그리고 전반적으로 머리 좋은 교활함(smart aleckness)이 우선된다”, 1930년대 뉴욕 데일리 뉴스 소속 스포츠 에디터의 말인데 유대인에게 붙는 전형적인 언사들이었다. 유대계와 농구의 이런 만남은 ‘퍼스트 배스킷(The First Basket)’이라는 2008년도 다큐멘터리 영화가 잘 다루고 있다고 한다.
뉴욕 이민사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한인 2세들, 특히 남자애들을 떠올렸다. 학교 다닐 때는 뭐든 운동 잘하는 애들이 짱이고 인기캡인데, 우리 애들 체격조건이 불리한 건 어쩔 수가 없고. 태권도?
한동안 비보잉에 한인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걸 보면서 그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잘하는 것을 찾아가는구나. 그래도 그게 풋볼, 농구, 야구처럼 메인은 아닌데...
아니다. 이젠 주류다. 요즘 BTS를 보면 이건 우리 애들이 최고다, 박수를 치게 된다. K-팝 붐에 코리안 보이들의 진면목도 잘 깎은 보석처럼 빛이 날 것을, 바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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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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