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들은 강의에서 서울대 방민호 교수의 『연인 심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생과 이생의 인연 속에서, 단순히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효녀가 아닌, 사랑하고 갈등하며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 심청을 만났다.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이 심청을 통해, 나는고전이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심청은 효녀의 상징으로 알려졌지만, 그 서사는 근대와 현대를 지나며 수십 개의 얼굴로 확장되어 왔다. 1912년 이해조는 창자 심정순의 판소리 <심청가>를 산정(刪正)해 활자본 『강상련』으로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강상(綱常)의 도리를 실천한 연꽃’이라는 뜻의 이제목은, 인당수에서 살아 돌아온 심청을 연꽃에 비유하며 고전적 효사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1996년 윤대녕의 『천지간』에서는 판소리 <심청가>의 ‘범피중류(泛彼中流)’ 대목을 인용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여주인공의 위태로운 상태를 전통 서사와 교차시킨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져 초월적 구원을 받았다면, 『천지간』의 여주인공은 죽음을 넘어 삶을 선택함으로써 현실적 구원에 이른다. 인당수로 뛰어들던 심청은 더 이상 희생의 신화가 아니라, 절망의 벼랑 끝에서 다시 삶으로 나아가려는 현대인의 내면적 투쟁으로 해석된다.
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에서는 청이가 뺑덕 어멈에 의해 상하이로 팔려간 뒤 ‘렌화’라는 이름을 얻고, 동남아시아를 떠돌며 스스로삶을 개척하는 인물로 다시 쓰였다. 이강백의 희곡 『심청』은 인당수제물 풍속의 봉건적 구조를 해체하고, 최인훈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심청의 희생을 구조적 폭력으로 되묻는다. 심청은 더 이상 고정된 이미지 속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윤리, 정치, 젠더 감각 속에서 새롭게 ‘읽히는 존재’가 된다.
재해석은 문학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현석의 오페라 <불량심청>은공양미 대신 막걸리를 담아 돈을 벌려는 심청을 등장시키며 희생의상징을 통렬하게 비튼다. <심청전을 짓다>는 심청이 없는 ‘심청전’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남겨진 자들의 기억과 고통을 중심에 놓는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심청은 변주되고, 관객의 감각에 따라 다시쓰인다.
이외에도 웹툰, 교육 콘텐츠, 동화, 창극 등 심청을 활용한 다양한 장르와 형식이 존재한다. 이처럼 고전은 구술에서 활자, 그리고 다시예술과 디지털로 이어지는 확장의 중심에 있다. 캐릭터는 하나지만, 그 변주는 무한하다. 이 유연성이야말로 고전이 가진 콘텐츠적 가치다.
IP(지식재산권) 중심의 콘텐츠 시대에서 가장 깊고 넓은 자산은 다시 쓸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고전을 재발견하고 되살리는일은 옛것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에 대한 새로운 미래를 여는 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심청전 관련해 현재 남아있는 이본(異本)은 목판본·필사본·활자본 등 230여 종에 달한다고한다. 우리 민족의 창작력과 이야기에 대한 열정은 대단한 듯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재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창작하는이들이 고전에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고전은 시대를 통과하며환생하는 생명체다. 심청은 그걸 증명하고 있다. 그녀는 늘 새로 태어나,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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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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